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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디모데전서 6장 11절 - 14절]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명령

[디모데전서 6장 11절 - 14절]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명령

 

1.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무엇이라 불렀는가? (11절)

 

바울은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로 디모데를 불렀다. 이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과연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가를 일깨워 주는 호칭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는 구약 시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서 구약 시대에는 주로 하나님께 높이 쓰임받던 인물들에게 붙여졌다. 예를 들면 모세(신 33:1; 수 14:6), 다윗(대하 8:14), 선지자들(삼상 2:27; 9:6), 엘리야(왕하 1:9), 하나님의 사자들(왕상 12:22)이 있다.

 

한편 이러한 칭호는 신약 시대로 넘어 오면서 어느 특정인에게 국한시켜 붙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또한 그분이 명하신 선교의 사명을 부여받은 모든 이들에게 붙여지게 되었다.

 

인간이 보기에는 우리가 비록 하찮은 존재 같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요 택하신 족속이며 그의 소유된 백성(참조, 벧전 2:9)이다.특별히 우리는 세상인과 구별된 성도이다(참조, 롬 1:7; 고전 1:2; 빌 4:21).

 

한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놀라운 칭호를 부여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의 노예로 전락할 때가 많이 있다. 이제 우리는 그 거룩한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모든 옛 습성과 죄던 본성을 억제하고 항상 주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디모데가 걸어야 할 길은? (11절)

 

그는 바울이 지적했던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아야 한다.

 

여기서 본문에 나타난 '이것들'이란 4-10절 사이에 언급된 멸망의 요인들을 가리킨다.

 

'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참조, 롬 6:5-11)으로서 여기서는 이러한 의를 힘입은 자가 지니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책무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향하는 세 가지 덕이 있는데 첫째는 '경건'이다. 평생을 두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경외심을 버리지 않는 것이 경건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참조, 벧후 1:3).

 

둘째는 '믿음', 즉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순종하는 미덕을 가리킨다. 세째는 '사랑'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서 인간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이다(참조, 요일 4:10).

 

한편 '인내'란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변함없는 경건을 가리킨다(참조, 살전 1:3; 5:14). 또한 '온유'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자가 지니는 특징 중 하나로서 형제들에게 안위를 제공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서 항상 여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참조, 마 11:29; 고후 10:1).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 속에는 그 특권과 더불어 주어진 삶의 자세와 책임이 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의 자세를 추구해 나가고 있는지 아니면 이름뿐인 '성도'로서 하나님과 교회를 어지럽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자세를 언급한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라는 뜻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12절)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배 자격으로 디모데를 향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것과 영생을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성숙한 신앙인들에게도 요청되는 삶의 자세이다.

 

여기서 '싸우라'(헬, 아고니존)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라'는 뜻인데 어떤 종류의 싸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싸우리'는 말을 꾸미는 '선한'이란 말은 '고상한'. 혹은 '눈부신' 이란 뜻으로 결국 여기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싸움은 세상의 육적 싸움과는 구별되어야 함을 가리킨자.

 

즉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혈기를 부리며 감정을 폭발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영원한 상을 위해서 사단이 제공하는 모든 불의한 것들(이단, 거짓 교훈, 정욕, 시기, 음란, 악한 분노 등)과 싸우며 인내하여야 한다(참조, 엡 6:12; 빌 1:31; 딤후 4:7).

 

한편 '영생'이란 선한 싸움의 결과 주어지는 상(賞)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 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할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참고 지켜야만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은 재산이나 건강이 아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 귀한 것은 내세에 대한 확실한 보증인 영생이라 할 수 있다(참조, 마 18:8; 요 6:68; 17:2, 3).

 

한편 바울은 이렇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얻기 위해 디모데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역설하였다. 특별히 디모데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된다는 사실을 그가 세례 받을 때와 목회자의 사명을 부여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한 적이 있는데(참조 4:14; 롬 1:9; 딤후 1:6), 이러한 고백이야 말로 영생을 소유한 자가 마땅히 해야 할 부분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디모데의 부르심과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행동으로 응답하고(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함) 입술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인간들은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위해 싸우며 그를 위해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일시적이며 곧 없어질 것을 위해 애쓰지 말고 거룩하고 영원한 것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참조, 딤후 2:4).

 

4. 바울은 디모데의 '선한 증거'를 무엇과 비교하였는가? (13절)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행한 증거와 디모데의 '선한 증거' 곧 예수께서 만인의 구세주가 되심을 증거한 사실을 비교하였다(참조, 마 27:22; 눅 23:3).

 

한편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 땅의 진정한 주권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두 존재 앞에서 엄숙히 증언하셨는데 먼저는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였다. 즉 모든 만물의 생명과 영혼과 존재 가치를 부여하신 하나님 앞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마무리 지으시며 당신이 이 땅의 생명을 구원할 자임을 명백히 고백하셨다. 이 같은 고백은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분리할 수 없는 생명적 합일체(合一體)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방조 내지 적극 장려함으로 인류 최대의 죄인으로 낙인 찍히게 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증거하셨다. 빌라도는 26 - 36년 사이에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매의 총독으로 재임하였으며 예수의 십자가 형을 선고한 자이다(참조, 마 27:24-26). 이처럼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음에 내어 준 자 앞에서와 자신의 죽음을 방조한 자 앞에서 죽으심으로 인해 당신의 선한 증거를 증거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이 땅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증언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는 것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으며 이런 생명의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며 생활한다는 의식이 있기에 빌라도로 대변되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히 '선한 증거'를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임을 고백해야 할 뿐 아니라 어떠한 죽음의 권세 앞에서도 이 '선한 증거'를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디모데의 증거 사역은 곧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참조, 행 22:20; 계 2:13; 3:14). ]

 

5. 디모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지켜야 하는 명령은? (14절)

 

그것은 여태껏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한 신앙적 권면들 특히 11절, 12절의 내용을 굳건히 지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적 교훈을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지켜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즉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참조, 3:2; 엡 5:27; 약 1:27; 벧후 3:14).

 

한편 이와 같은 신앙적 열심과 순수성이 한 순간에 그쳐서는 안되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즉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로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되어져야 한다(참조, 딤후 1:10; 4:1; 딤 2:13).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처소에서 어떠한 일을 하든지 간에 복음의 빛에 견주어 조금도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삶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 날에 우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실 것이다(참조, 시 58:11; 마 6:4; 계 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