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생활

[디모데전서 5장 21절 - 25절]훈계와 책임 / 바울의 권위와 권고

[디모데전서 5장 21절 - 25절]훈계와 책임 / 바울의 권위와 권고

 

1. 바울은 자신의 권위를 어떻게 나타내었는가? (21절)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의 징계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려고 애썼다. 그 한 예로서 그는 지도자들의 치리 문제를 언급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명한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발언이 결코 경솔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여기서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란 타락한 천사들과 대조되는 선한 천사들로서(참조, 위경 에녹서 39:1)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참조, 계 18:1; 19:17; 20:1; 21:9). 결국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 거짖이 없이 목회자의 징계 문제를 논한다고 했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란 표현은 예배 의식적인 표현으로서 이 세 존재가 최후 심판에 참예(參預)할 것이라는 사상에서 언급되었다(참조, 막 3:38; 눅 9:26; 계 14:10).

 

이처럼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교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다음 신중하게 권면의 사역을 수행해 가야 한다. 바울은 항상 하나님과 그분이 개선할 심판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행동이 앞서고 말이 많아진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요구된다.

 

2. 디모데는 바울의 교훈을 어떻게 실천하여야 했는가? (21절)

아직 나이가 없고 경험이 부족한 디모데는 바울이 제시한 여러 교훈들을 편견이 없이 지켜 아무 일도 편벽(偏僻)되게 하지 말아야 했다.

 

즉 교회 지도자인 디모데는 결코 자신의 선입견에 의해 일을 성급하게 처리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사랑과 의에 입각해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가 편견을 가지고 자신의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억압과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자세는 항상 공의로와야 한다(참조, 약 2:4). 만약 이런 자세가 흐트러지는 날이면 교회는 분란이 일어날 것이며 복음의 빛이 가리워지게 될 것이다.

 

3. 성급한 판단 외에 목자로서의 디모데가 지켜야할 사항은? (22절)

먼저 그는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해서는 안 된다. 즉 회개와 깨달음이 없는 사람에게 인수해서는 안된다. 중생의 체험이 없는 자에 대한 안수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기기 위해 안수할 때 신앙 인격이나 성실성 또는 구원의 확신 등을 확인해 보지 않고 단순리 유명 인사나 재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안수한다면 그것은 교회에 큰 환난을 불러들이는 격이 된다.

 

둘째,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즉 주제 넘게 타인의 허물을 들추어 내거나 그것에 동조한다거나 또는 방임하지 말고(참조, 마 27:24)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교회는 안정을 찾고 교인들 각자는 평안한 가운데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

 

셋째,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여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인들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경건이기도 하다(참조, 약 1:27). 이런 경건을 통하여 세상은 서서히 변화해 갈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선한 열매를 맺힐 때 교회는 분명 그 모범을 따라 생활하게 될 것이다(참조, 4:12-16).

 

4. 바울이 디모데 개인을 위해 주는 권고의 말은? (23절)

몸이 몹시 쇠약해져 있는 디모데를 심히 걱정하면서 속병의 치료를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 귀절은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따뜻한 사랑과 영적 아버지로서의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다. 한편 이스라엘 사뢰에서는 금욕주의적인 계율이 있어 왔다. 즉 나실인 서약자는 포도주나 포도로 만든 것을 먹지 않았으며(민 6:1-21), 레갑인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렘 35:5-7).

 

더우기 디모데 역시도 자기 생활에 어느 정도의 금기 조항을 마련해 두고 소극적인 삶을 살았으며 몸이 약하여 자주 병으로 고생하여던 것 같다. 여하튼 포도주의 효용성을 이용할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바울은 적당량의 포도주(과음은 오히려 몸을 해침)를 사용하여 위를 강하게 하도록 권했다.

 

22절까지 장로의 규례에 대해 엄격한 명령을 하던 바울이 갑자기 디모데 개인의 건강을 위해 포도주를 사용하도록 권한 것은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교훈이 결코 금욕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4:1-5). 더우기 이 권고는 쾌락주의를 권고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바울이 권고하고 있는 바와 같이 건강을 해칠 만한 금욕주의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득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참조, 4:4).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방종을 허락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들을 철저히 응징하신다.

 

5.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은 어떻게 구별이 가능한가? (24절, 25절)

어떤 사람들의 죄는 명백해서 재판을 받기 전에 드러나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나중에야 드러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착한 행실도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인데 당장에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어떤 죄악이나 선행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악도 선으로 가장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 교회와 하나님 앞에서 공정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선을 가장한다 하더라도 모든 행실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면을 벗기고 심판하실 것이다(전12:14). 반면에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선행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특히 목회 사역을 감당할 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필요한 사상이다. 하나님 앞에서 감추어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참조, 히 4:12).

 

그러므로 이 세상에 악이 횡행한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원한을 품을 필요가 없다(참조, 갈 6:9, 10). 우리는 단지 그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 된다(참조, 벧전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