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4장 1절 - 5절] 이단의 위험성
1. 바울이 디모데에게 어떠한 교훈을 하고 있는가?
전 장(3장)에서 교회 직분자들의 자격을 설명했던 바울은 이제 본장에서 그러한 교훈의 지도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디모데 개인에게 대한 권면을 통해 온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는 먼저 마지막 날에 배교(背敎)가 일어나며 뒤이어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있을 것을 경고했다(벧후 2:1).
바울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혼인과 식물을 금하는 등의 금욕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계 14:4).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그분의 경륜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반박하였다(4절).
한편 바울은 배교와 거짓 교사들이 횡행하던 그 당시에 과연 어떻게 하면 올바른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지침으로서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올바로 가르치기를 명하였다. 또한 그 명령 가운데서 복음 사역자들이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다(10절).
마지막으로 그는 배교의 위험을 막아내기 위해 힘써야 할 디모데 자신이 스스로의 진보를 위해 계속 정진(精進)하며, 말씀 전파 사역에 최선을 다할 것을 명하였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거짓 복음을 전하며 성도들을 미혹하는 무리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목회자들은 항상 양 떼들에게 바른 영의 양식을 먹임으로써 자신의 양 떼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참조, 겔 33:6).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해서 목회자들이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스스로의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2. 바울이 성령의 계시를 받아 전한 예언은 언제 성취될 것인가? (1절)
그 모든 예언들은 후일에 성취될 것이다. 여기서 '후일'이란 묵시 문학적으로는 '말세'(막 13:5, 6, 22, 23; 딤후 3:1)를 말하지만 바울은 가까운 장래에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도 암시하고 있다(참조, 벧후 2:1).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삶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항상 영적인 긴장을 할 수 있었으며 비록 사단의 활동이 극심해지는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악한 세력의 활동을 예지(豫知)할 수는 있었던 것이다(참조, 행 20:23; 골 2:8, 16).
이와 같이 날마다의 삶에서 영적인 긴장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은혜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후일'에 있을 사단의 활동을 대비하여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되면 자연히 죄악의 올무에 빠지거나 실수를 하지 않게 되고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삶이 풍요하고 안락하다고 해서 영적으로 나태하여 사단의 미혹에 빠지지 말고 늘 '종말 의식'을 가지고 깨어 긴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때에 비로소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참조, 벧전 5:8-10).
3. 사람이 거짓 교훈에 이끌리게 되는 근본 이유는? (1절)
그것은 한 개인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거짓 교훈을 믿게 되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고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를 부인하는 데서 비롯된다(참조, 1:19). 사실 좌와 죽음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인간의 자의적인 행동 곧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이다(참조, 창 3:6).
이처럼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믿음에서 떠나게 되면 곧바로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된다. 여기서 미혹케하는 영이란 진리의 영과는 반대되는 것으로서 사단을 의미한다(참조, 마 25:15; 요일 4:6; 계 16:14). 계속해서 귀신의 가르침이란 사단의 부하격인 악한 세력들의 그릇된 교훈을 가르킨다(참조, 고후 4:4; 계 13:11, 14).
이렇게 사단에게서 전해지는 그릇된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거짓과 파괴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참조, 약 3:15) 그것을 따르는 인격에게 혼란과 불의를 제공한다.
한편 그 거짓 교훈은 항상 진리로 위장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때문에(참조, 고후 11:14) 성도들이 말씀에 입각하여 자기에게 전해진 교훈을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수요하게 되면 사단의 올무에 빠지고 말 것이다(참조, 요일 4:1).
그러므로 한 인격을 파탄으로 내몰고 사단의 올무에 빠지게 하는 거짓 교훈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난 인간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항상 자신의 믿음 안에 거하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참조, 고후 13:5). 더우기 신앙 세계는 중간 지대가 용납될 수 없음을 깨달아 항상 진리를 좇아 생활하는 신실함을 지녀야 할 것이다.
4. 바울은 믿음에서 떠나버린 자의 상태를 어떻게 묘사했는가? (2절)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그들은 양심이 화인(火印)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여기서 '화인 맞다'는 말은 원래 노예 매매가 활발했던 당시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서 그 당시 노예는 이마와 같은 신체 부위를 불로 지져서 주인의 소유로 표시되었다. 물론 그 지진 부위는 다른 부위와는 달리 감각이 없어지고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양심이 화인 맞았다는 것은 한 개인의 양심이 사단의 지배 아래 있어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없게 되고 자기 행동이 그릇됨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무디어졌다는 의미이다(참조, 엡 4:19).
그 결과 그들은 철저히 위선의 탈을 쓰고 하나님 앞에서(참조, 마 7:15; 딛 1:16)거짓말을 일삼아 많은 사람을 진리에서 떠나게 했다(참조, 창 3:1-5).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버린 인격은 사단의 도구로 전락하여 항상 불의와 부패를 조성하며 그 이웃과 교회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참조, 민 22:12, 19, 21, 22; 마 24:24; 베후 2:15). 교회는 이같은 자들의 활동을 저지해야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교회 전체의 믿음의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숙한 신앙인에게 사단은 그 힘을 잃고 만다.
5. 믿음에서 떠난 자들의 교훈은 무엇인가? (3절)
그들은 혼인을 금하고 식물(食物)을 폐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는 무관한 금욕주의의 전형으로서 바울 당시에 활동하고 있던 영지주의자(靈知主義者)들의 가르침이었다. 그들은 정신은 선하고 물질(육체)은 악하다는 명제를 신봉하며 그러한 기준에 따라 삶의 규범을 만들어 갔다.
따라서 그들은 육체 뿐 아니라 육체의 본능과 신체의 모든 기능마저도 악하기 때문에 천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육체적인 나눔을 이루는 결혼을 정죄하고 결혼의 무용론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육체의 무가치성을 주장하여 육체를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고 하였다. 즉 남녀의 성적 방종을 조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육체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물에 대해서도 규제 조항을 마련하였다. 예를 들면 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한다거나(참조, 골 2:16, 23) 이방 신상에 바쳐졌던 제물을 먹지 못하게 한 것(참조, 고전 8:7) 등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모든 것을 '좋게', '선하게' 창조하셨다(참조, 창 1:10, 12, 18, 21, 25, 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들을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을 것이다(참조, 막 7:15; 롬 14:14; 딛 1:15).
이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모든 기회와 물질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결코 인간의 악한 본성으로는 불가능하다(참조, 롬 1:21). 그런 점에서 바울은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 만이 그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의 무가치성이나 음식물의 제한 규정 등의 그릇된 교훈에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합치된 삶(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올바로 신앙하고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참조, 행 10:10-15). 이처럼 하나님을 중심한 삶은 인간의 오류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비결이다.
6. 혼인과 음식의 금지 규정을 강조하는 금욕주의자들을 향한 바울의 반박은? (4절)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바울의 주장은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기에 그 분이 창조한 모든 세계도 선하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창 1:29, 31; 9:3).
어떤 면에서 바울은 본 절을 빌어 유대인들의 음식에 대해 나름대로 구별하는 관례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레위기 율법에 나타난 '정결한 동, 식물'과 '부정한 동,식물'의 구별 자체를 거부하면서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고 가르쳤던 것이다(3절).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금해야 할 음식이란 있을 수 없다. 사실 음식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기 때문에 잘못된 경향성이 있을 뿐이다(참조, 마 15:11-20). 이처럼 그리스도 인들은 삶에 어떠한 금기를 두기 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질서 안에서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더우기 삶을 부정한다든지 삶에 대하여 자신을 포기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지혜롭고 절제하는 삶을 삶으로써 과욕으로 인한 타락을 막아야 한다(참조, 고전 6:12).
7. '선한 것'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거룩해지는가? (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거룩해진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식사하기 전에 갖는 기도회에서 낭독한 성경 귀절을 의미한다기도 하고 기도 중에 인용하는 성경 귀절을 가르키기도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취할 수 있는 해석들이다.
한편 '식물'은 그 자체가 거룩한 성질을 지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식물'은 무인격체이고 스스로 하나님을 의식할 만한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구약 시대 성전에 있던 물건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었던 사실과 통한다(참조, 왕상 9:3). 결국 거룩하다는 말은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지도 그렇다고 더럽지도 않은 식물이지만 우리가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먹게 되면 그 '식물'은 하나님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거룩하여 지는 것이다(참조, 딤후 2:21).
특별히 그렇게 거룩하여진 음식을 먹고 활동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그 거룩성은 더욱 돋보이게 된다. 우리의 먹고 입고 자는 평범한 삶이 하나님과 항상 연관되어 질 때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다(참조, 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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