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생활

[디모데전서 4장 6절 - 16절] 이단에 대한 방어

1.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는가?(6절)

 

만약 디모데가 15절까지의 교훈들로 자신이 목양하는 형제(그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목양하고 있었다)를 깨우치면 마침내 그는 그리스도인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그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일군'((헬, 디아코노스)이란 단어는 3:8, 12에서 '집사'라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 본절에서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청지기 또는 종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이 '일군'이 감당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써야 하며 진리를 바로 세우고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과 형제를 일깨우는 것 등이다.

 

또한 '믿음의 말씀'은 참된 진리인 복음을 가리키고 '그가 좇은 선한 교훈'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실천해 온 성격적인 교훈들을 가리킨다(참조, 딤후 1:5; 3:14, 15). 한편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이러한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을 통하여 양육받을 것을 권면하였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선한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주위의 형제들을 진리로 깨우쳐야 할 뿐 아니라 항상 말씀으로 자신을 훈련시키는 성실함이 있어야 한다.

 

오늘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은 남을 향해서는 많은 교훈을 전하고 권면하지만 자신을 향해서는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고 말씀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자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2.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교훈을 요약하라?(6절 - 8절)

 

'지도자는 먼저 사람들을 깨우쳐야 한다.' 그런데 '깨우치면'(헬, 후포디데스다이)이란 말(6절)의 원뜻은 어떤 명령을 내린다기 보다는 '충고', '권고', '제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지도자는 강압적으로 어떤 지식을 주입시키기 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기억시키고, 성경에 입각한 바른 교훈을 제시하여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권위를 소유한 자의 모습이다.

 

둘째 '지도자는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도자가 무엇을 가르치려면 먼저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르치는 대상들과 함께 늘 배우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교만한 자세는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이다(참조, 잠 16:18).

 

세째 '지도자는 본이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예수의 말씀 그대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도자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모범 삼아(참조, 히 12:2) 그분으로부터 받은 믿음과 지식을 말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실지로 본을 보이는 삶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네째 '지도자는 공동체에 대해 그릇된 교훈을 경계시켜야 한다.' 사람들이란 조금 알게 되면 모두 안 것 처럼 교만해지거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습득하려는 욕망이 생긴다. 이 때 지도자는 혼란과 그릇된 교훈으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어야 한다.

 

다서째 '지도자는 성도들이 경건해질 수 있게 훈련 시켜야 한다.' 이 가르침은 당시 헬라의 도시들에서는 경기장이 많아 육체를 단련시킬 기회는 많았으나 정신을 훈련시킬 기회가 적은 데 대해 경건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요즈음처럼 교회가 부흥을 하고 곳곳에 많은 예배당이 세워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흥과 더불어 찾아온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따를 만한 정신적 지도자가 드물다는 것이다(참조, 고전 4:15). 이때에 진리의 복음에 바로 서 하나님 교회를 성숙하게 만들 일군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참조, 사 6:8).

 

3. 바울은 경건의 연습이 어떤 점에서 좋다고 했는가?(7절, 8절)

 

혼인의 금지와 음식물의 제한을 강조한 가르침은 경건을 가장하지만 실지로는 경건에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모독하는 망령된 교훈들과 진실성이 결여된 떠돌아다니는 민간의 신화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기에 신앙인에게는 버려야 할 것들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것은 육체의 연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유익을 가져다 준다고 하였다. 여기서 '육체의 연습'이란 고대의 운동 경기자들이 운동장에 나가기 전에 부지런히 훈련하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로서 신체적인 건강을 얻기 위한 훈련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이 육체적 연습이 조그만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즉 그는 영지주의자들처럼 육체를 천시하지 않고 영혼이 그러하듯이 육체 역시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으로서 그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처럼 육체적 연습이 인간에게 유익을 주듯이, 범사에 유익을 주고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에 약속이 있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바울은 권면하였다.

 

사실 경건한 삶을 사는 자는 날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함으로써 현세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것이며(참조, 창 6:8, 9),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살 것이다(참조, 막 10:30).

 

그러므로 우리는 시끄럽고 혼탁한 세상의 교훈들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생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삶의 풍성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인 의미에서 가장 값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참조, 요 3:14, 15; 12:25; 17:3; 고후 5:1-10; 갈 6:8).

 

4. 참된 경건을 위하여 바울과 동역자들이 수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9절, 10절)

 

그것은 경건에 관해 언급한 8절의 교훈 자체가 믿을 만하고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한 것이며 또한 자신들의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걸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경건이 헌재와 미래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생명을 보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탄하지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귀한 진리는 인간의 마음을 고조시키고 현재의 고난을 감내할 수 있게 한다.

 

특별히 바울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하는 것은  자신의 소망을 썩어져 없어질 이 땅에 두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이 땅의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모든 인간의 삶을 간섭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기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는 결코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참조, 고후 4:16-18; 벧전 1:3, 4).

 

그런데 바울이 소망한 그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즉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는 구원자이시다(참조, 요 3:16). 혹자는 이 같은 귀절을 들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이론을 펼치지만 그분은 분명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다시 말하면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만물의 주관자이시지만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한 가지 덧붙여 구원자가 되시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비록 이 땅의 삶이 힘들다 할지라도 인내하며 온 정열을 다해 복음 전파 사역과 교회를 바로 세우는 데 힘쓸 수 있었던 것이다(참조, 골 1:29; 4:12; 딤후 4:7).

 

이처럼 주를 믿는 성도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있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려면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생명력과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참조, 시 125:1; 잠 29:25; 사 26:4).

 

5.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함으로써 권위를 세우라고 하였는가?(11절, 12절)

 

바울은 나이가 많지 않아 교회의 지도자로서는 불충분하게 보이던 디모데에게 자신 있는 목회를 권면하면서 먼저 가르치는 것과 남에게 본이 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환기시켰다.

 

여기서 '이것들'이란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훈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작게는 구원의 바른 도리와 경건 생활에 관해 언급한 1-8절의 말씀이며, 크게는 1-4장까지의 모든 교훈을 포함한다.

 

그리고 '명하다'(헬, 파랑겔레)는 단어는 원래 군대에서의 명령을 말한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을 가지고 자기가 확신한 진리를 근거하여 교회를 가르치라고 하였다.

 

더우기 그가 연소(年少)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연소함(헬, 네오테스)이란 군대에 나갈 만큼 다 자란 사람으로부터 40세 정도까지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로서 경험과 연륜이 부족한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따라서 당시 37 - 40세 정도이었던 디모데가 나이 많은 장로들과 교인들 틈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연소하게 여김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가 이 같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온 교회의 본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젊은이들이 결여하기 쉬운 엄숙함과 신중함, 남을 돌보아 주는 일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믿음직함 그리고 물질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정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을 디모데에게 권고했다.

 

만약 위에 제시한 것들에 대해 모든 교인들 앞에서 본이 된다면 그들은 결코  디모데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꼬집어 그를 업신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젊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감추려 하거나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지나친 권위를 내세우지 말고 믿음의 선한 모범을 보임으로써 온 교회에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참조, 딛 2:7).

 

6. 바울이 도착할 때까지 디모데가 자신을 바쳐 헌신하도록 명령받은 사항은?(13절)

 

그것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着念)하는 것이다.

 

여기서 '읽는 것'이란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것을 말한다. 즉 초대 교회는 유대교의 회당에서 행해져 왔던 성경 낭독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예배 의식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때 읽은 책들은 구약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 그리고 사도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들이었다(참조,골 4:16; 살전 5:27).

 

초대 교회 당시에는 신앙인들의 마음이 단순하고 순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전인격을 동원하여 그 모든 내용을 수납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성경 낭독은 그들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디모데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눅 4:16-30) 읽는 성경을 성도들에게 해석해야 했다. 성경은 알기 쉬운 책이 아니며 인간의 본성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말씀 속에 담긴 오묘한 진리를 깨우쳐 주어야 해ㅛ으며 교리를 올바로 가르쳐 주어서 이단 사상과의 혼돈을 막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디모데는 성도들이 들은 말씀대로 살도록 권면하여야 했다. 즉 복음이 복음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복음이 진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복음을 들은 자들의 생활이 변해야 하며 행동으로 진리임을 보여야 했다(참조, 약 2:20, 22, 26).

 

이처럼 교회의 영적 성숙과 모든 교인들의 삶을 책임 맡고 있는 목회자는 좋은 인간 관계나 훌륭한 지도력(통솔력) 그리고 교회 정치의 능숙한 수완이 필요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성경을 가르치고 권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야 한다. 성경에 대한 바른 깨우침이 없이 단순히 외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는 목회자는 쉽게 넘어지고 또한 교회 전체에 폐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7.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내용은??(14절)

 

그 내용은 디모데 안에 있는 은사를 활용하지 않거나 남용하지 말 것을 경계한 것이다.

 

즉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적 능력(은사)을 조심해서 사용할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군들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 그러나 만약 은사를 받은 일군이 그 은사를 선하게 활용하지 않는다든지 지나치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면 분명히 그 일군을 책망하시거나 심판하실 것이다(참조, 마 25:24-27).

 

이상과 같은 언급을 통해 볼 때 디모데가 부여 받은 목회자라는 위치는 직책상의 지위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임무가 더 중요시 됨을 알 수 있다. 또한 디모데가 선배 목회자인 바나바와 바울(행 13:2) 성령으로 말미암아 목회자로 지명되고 성별되었다는 사상도 아울러 내포되어 있다.

 

사실 목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지도하는 일로서 인간의 열심이나 지혜로써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군들을 선택하실 때 그에 따라 적절한 은혜를 공급해 주신다. 즉 목회자가 예언의 말씀으로(1:18) 성령에 의하여 임명될 때에 그리고 장로들이 그의 위에 안수할 때에는 그에게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권위와 자기의 사명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이 주어진다(참조, 행 8:17; 9:17; 19:6).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은사를 받은 자들이 많다. 은사를 소유한 자들은 바울이 본절에서 명한 바와 같이 그것을 자신의 명예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고 받은바 은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즉 그 은사를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참조, 고전 12:4-11).

 

8. '장로의 회'와 '안수'(按手)에 대하여? (14절)

 

먼저 '장로의 회'란 원래 유대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유대의 최고 권위 기관이며 사법 기관인 산해드린을 일컫는 말이었다(참조, 눅 22:66; 행 22:5).

 

그런데 이러한 조직이 초대 교회 정치 제도에 그대로 반영되어 교회의 중대사를 논하는 의결 기관이자 성례전을 집행하던 단체로 직제화되었던 것이다(참조, 행 20:17). 바울도 이 장로의 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것 같다(참조, 딤후 1:6).

 

이 '장로의 회'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미비하다. 그런데 초대 교부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에 이르러 장로가 감독과 명백히 구분되고 교권상의 계급에서 감독 다음의 서열에 서게 되기 전까지 감독과 더불어 성직을 임명하는 일에 봉사하였다(참조, 4:14).

 

한편 '안수'란 은혜(은사)나 권위, 축복 또는 능력 등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받은 대상에게 전달하는 상징적인 행동이다. 이 또한 옛부터 전해 오는 유대인들의 관습으로서 주로 권력과 위엄을 지닌 정치, 종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실행되었다(참조, 창 48:14; 민 8:10, 11; 왕하 4:34).

 

이처럼 관례가 초대 교회 안에 그대로 반영되어 감독을 위시한 '장로의 회'에서 병든 자(참조, 막 6:5; 눅 4:40)와 성령의 내주가 필요한 자(참조, 행 19:6)에게 실시되었으며 교회 지도자를 임명할 때(참조, 행 6:6) 또는 축복을 빌 때(참조, 막 10:13) 등에 실시되었다.

 

본절에 언급된 디모데의 안수도 바로 위의 경우 가운데 하나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단순히 인간의 의식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장로의 회'의 안수를 통해 부여받은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으로 말미암아 그 권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은사와 권위를 교회의 대표자들에 의해 부여받은 그 직책이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목회의 권한을 부여받은 교회 지도자들 중에 자신의 영예와 만족만을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음은 심히 유감스로운 일이다. 주께서 부여하신 직책은 오직 주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9. 바울은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당부를 하였나? (15절)

 

바울은 자신이 교훈한 모든 일에 전심 전력(全心全力)하여 디모데 자신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목회자로서 수행해 나가야 할 일, 즉 성경 읽기, 설교 하기, 가르치기, 자신의 믿음과 인격을 성숙시키는 일, 은사를 올바로 활용하는 일 등과 관련된 말이다(참조, 12절 -14절).

 

디모데는 이 같은 자신의 임무 수행과 더불어 신앙과 인격의 진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야 했다. 왜냐하면 일반 성도들이 목회자를 평가하는 근본적인 척도는 가르치며 권면하는 일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하는 것이다.즉 성도들은 입술로만의 가르침이 아니라 삶을 통한 메시지를 원한다.

 

하나님과 자신이 목양하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목회자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는 항상 더 나은 신앙과 인격을 갖추기 위해 매일 경건의 훈련을 쌓는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구태 의연한 설교와 게으르고 본받을 것 없는 삶을 사는 목회자는 이미 자신의 목회 생명이 다한 것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목회자는 자신이 실패하게 되면 많은 영혼들이 또한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날마다 되새겨야 한다.

 

10. 바울이 본장을 통해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명령은? (16절)

 

그것은 디모데가 스스로 조심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즉 그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청렴해야할 뿐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이 전하는 그 교훈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며 살펴야 했다.

 

이는 가르치는 자의 올바른 자세를 규정하는 교훈으로 가르치는 자는 남을 가르치기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배우는 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사실 가르치는 자가 범하는 가장 흔한 실수는 타인에게는 교훈과 권면으로 가르치지만 자신은 전혀 훈련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참조, 고전 9:27).

 

또한 그는 자신이 가르칠 내용을 자세히 연구하여 배우는 자들에게 보다 나은 영(靈)의 양식을 먹일 수 있어야 한다. 게으른 목회자는 양들을 영양 실조에 걸리게 한다.

 

그런데 만약 그가 이 같은 충고를 성실히 이행하게 되면 그에게는 두 가지 성취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구원이며(참조, 빌 2:12), 둘째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이 말씀에 올바로 서 있는지를 살펴야 하며(참조, 고후 13:5) 또한 아직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의 말씀으로 날마다 교훈하여야 한다. 이 둘 중 하나라도 과하거나 약하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참으로 훌륭한 목회자는 자신과 자신이 목양하는 성도들과 더불어 날마다 천국 시민의 생활을 하는 자이다. 이러한 영혼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