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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구약]한국의 남북과 유사한 분열 왕국 시대

3-7. 분열 왕국 시대

분열되 나라는 북 이스라엘이 북한과, 남 유다가 남한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 북 이스라엘과 북한의 유사점 * 남 유다와 남한의 유사점

- 둘 다 북쪽에 위치했다. - 둘 다 남쪽에 위치했다.

- 영토가 남쪽보다 넓다. - 영토가 작다.

- 영적으로 더 타락했다. - 영적인 정통성을 유지했다.

 

단, 남한이 북 이스라엘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인구가 많다는 것과 사회가 사치와 향락에 훨씬 더 물 들었다는 면입니다.

 

[줄거리 요약]

북 왕국은 줄기차게 멸망의 길로 가고, 남 왕국은 갈팡 질팡하며 멸망을 향해 갔다.

 

[내용 전개]

분열 왕국 시대는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왕국 분열 이유 2. 북 이스라엘 3. 남 유다)

 

1. 왕국 분열의 이유 : 솔로몬의 범죄와 여러가지 상황에 의해 분열 (열왕기상 11장 - 14장)

왕국이 분열한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1) 지파 공동체의 문제점이 드러남(유다 지파 주도의 통치에 다른 지파가 반발).

(2) 애굽의 바로 '시삭'이 이스라엘, 특히 중계 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솔로몬의 왕국을 약화 시키기 위하여 정치적 공작을 폄(반 솔로몬 체제 사람들을 후원함).

(3)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정치적인 미숙함.

 

그러나 역시 이 모든 현상적인 이유의 저변에는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계셨고, 결국 하나님이 분열시킨 것이다. 왜? 솔로몬의 범죄 때문에, 그나마 왕국이 망하지 않고 분열만 된 것은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었다.

 

2. 북 이스라엘 :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던 불의한 왕국 (열왕기상 15장 - 열왕기하 17장)

북 이스라엘의 운명은 첫 왕인 여로보암에 의하여 결정되고 말았다. 왕국이 분열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어서 백성들이 절기 때에 그곳에 갔다가 변심할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는 중요한 범죄를 저질렀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게 한 그것이다. '여로보암의 악한 길' 그것이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재는 척도가 되고 말았다.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기고 북 왕국의 번성기를 열었던 '오므리' 왕과 그 아들 아합도 북 왕국에서는 빼 놀을 수 없는 왕들이다. 나라는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온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의 우상, 특히 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을 통해 들어온 두로와 시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음란히 섬기게 한 죄가 큰 왕들이다.

 

북 왕국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정변이 무수히 일어났다는 것이다(여섯 내지 일곱번). 이는 정통성이 없는 왕들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 왕국은 250년간을 계속되다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했다(왕하17:22-23).

 

"22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23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왕하17:22-23).

 

3. 남 유다 : 다윗의 의로운 길을 따르다가, 벗어났다가 하던 변덕스러운 왕국(열왕기상 15장 - 열왕기하 25장, 역대하 10장 - 36장)

남 왕국의 관건은 오앙들이 다윗의 길을 따라 가는가, 아닌가였다. 남 유다에서는 대표적으로 다윗의 길을 따른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아'였다.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으로 성전을 보수하고, 우상숭배를 타파했다. 그리고 앗수르의 산헤립이 공격해 왔을 때 하나님만 의지하며 물리쳤던 신실한 왕이었다.

 

요시아도 역시 신실한 왕으로 특별히 성전을 보수하다가, 잃어버렸던 신명기 원본을 찾아 그것에 의한 종교 갱신을 일으켰던 왕이었다. 그는 히스기야의 개혁에서 남은 부분이었던 산당까지 모두 없애는 개혁을 하였다. 하지만, 국제 정세와 시대를 읽는 정치적 감각은 좀 부족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애굽왕 바로 느고와 싸우러 나갔다가 '무깃도'에서 전사했다.

 

이 외에도 남 유다에는 신실한 왕들이 많았으나 다윗처럼 그렇게 일관되게 신실하지 못하고 중간에 하나님을 떠나는 왕들도 많았고, 혹은 처음부터 악한 왕들도 있었다. 남 왕국의 특징은 정변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변이 일어나도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데(두 번 정도의 시도가 있었으나 오히려 정변을 일으킨 자가 백성에 의해 축출됨), 이는 다윗의 신실함 때문이었다.

 

이렇게 400년을 지속되던 남 왕국은 주전 583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때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남은자가 되어서 신앙을 지켜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