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장 1절 - 7절] 복음 / 그리스도인의 상징(군사, 경기하는 자, 농부)
1. 본 장의 내용은? (2장)
본장에서 바울은 아시아 성도들의 배반과 오네시보로의 충성을 이야기한 전장의 후반부에 이어, 이제는 디모데에게 은혜 안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성도 중 신실한 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라고 권면하고 있다(1,절, 2절).
또한 바울은 복음의 사역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군사, 경기하는 자, 곡식을 가는 농부 등의 비유를 통해 교훈해 주고 있다(3절-7절).
아울러 그는 듣는 자를 올무에 빠지게 만드는 말다툼을 피하고, 거짓을 가르치는 이단들로부터 떠나 진리 안에 거할 뿐 아니라 자신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다(14절-21절).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하며, 하나님의 종으로 성도들을 잘 이끌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22절 - 26절).
이상과 같은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성도라면 누구나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 생명의 복음을 세계 만방에 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참조, 4:2; 마 24:14).
2.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은? (1절, 2절)
첫째,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해지라고 당부하고 있다.
디모데는 믿음이 신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유약한 면이 많았다(참조, 딤전 5:23).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의 여러 서신들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좀더 강하고 담대해지라고 강조하였다(참조, 1:6-8; 4:17; 행 9:22; 롬 4:20; 엡 6:10; 빌 4:13; 딤전 1:12).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하고 주의 은혜를 힘입을 때에만 사람들이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다. 여기서 '주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부여하신 '은사'를 의미한다(참조, 1:6).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지키고 가꾸어 나갈 때 비로소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둘째, 바울은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디모데에게 당부하고 있다.
여기서 '내게 들은 바'는 바른 교훈, 즉 복음을 의미하고(참조, 딤전 6:20) '충성된 사람'은 복음과 진리에 대해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말로나 행위로 타인을 가르칠 수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참조, 고전 4:1, 2; 딤전 3:2).
따라서 이 말은 복음의 바른 진리를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탁하신 명령이기도 하다(참조, 마 28:20).
상기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복음 사역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강하고 복음에 충성되고 사람들에게 신실한 자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참조, 고전 7:32-34).
3. 바울은 복음 전도자를 무엇으로 비유하고 있는가? (3절-6절)
바울은 복음 전도자를 '군사'와 '경기하는 자'와 '수고하는 농부'로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군사'는 자신을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경기하는 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대로' 경기하는 것이다. 또한 농부는 땀을 흘려 수고해야만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려 할 때 고난은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전심 전력으로 싸우고, 법대로 경기하며, 힘껏 일할 경우,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참조, 빌 3:12-14; 히 12:1-3).
4. 성도 혹은 복음 전도자를 군사로 비유한 이유는? (3절, 4절)
성경에는 복음 전도자를 '군사'비유한 곳이 많이 있는데 군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참조, 고전 9:7; 엡 6:10-17; 골 2:15).
첫째, 군사들은 어떠한 고난도 견디어 내야만 한다. 군인들이 전쟁에 임해서 겁을 먹고 물러설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군사된 성도들은 어떠한 고난과 핍박에 처해서도 기꺼이 인내하고 승리해야만 한다(참조, 고후 10:3-5).
둘째, 군사들은 자기 생활에 얽매일 수 없다. 즉 군인들은 자기 직무에 전심전력 해야만 한다. 그런데 군사로 다니는 사람이 자기의 사적인 이해 관계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것에 뒤얽히게 된다면 군인으로서 그에게 부여된 임무에 전심 전력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특별히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목회자들은 개인의 사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능력, 삶 전체를 바쳐야 한다(참조, 마 6:33).
세째, 군사들은 자기를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한다. 군인의 유일한 목표가 자신을 모집한 상관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처럼 복음 전도자들도 오직 한 가지 복음 전파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들릴 수 있다는 거룩한 열정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참조, 빌 3:8).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군사된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주인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삶을 헌신해야만 한다(참조, 고전 7:32-34; 요일 3:22).
5. 성도를 '경기하는 자'로 비유한 이유는? (5절)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로 복음을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전심 전력을 다한다고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종종 성도들의 삶을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경기하는 자의 최종적인 목표는 승리하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법대로' 경기하는 것이다(참조, 고전 9:24-27; 빌 3:12-14; 히 12:1-3).
만약에 선수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일등을 해도 승리의 면류관을 받아 쓰지 못한다. 이처럼 선수가 법대로 경기해야만 승리자가 될 수 있듯이 복음 전도자들에게도 지켜야 할 법이 있다(참조, 벋전 5:4).
그러므로 우리 복음 전도자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지켜야 할 법칙들, 예를 들면 진리를 떠나지 않는 것, 사랑으로 행하는 것, 사랑과 온유의 정신으로 징계하는 것 등을 준수하여 의의 면류관(딤후 4:8),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참조, 살전 2:19; 약 1:12; 계 2:10).
6. 복음 전도자를 '수고하는 농부'로 비유한 이유는? (6절)
바울이 복음 전도자를 '수고하는 농부'로 비유한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첫째 이유는 풍성한 수확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농부처럼 복음의 결실을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참조, 잠 20:4; 24:30, 31).
복음은 말로만 해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자의 땀 흘리는 수고를 통해서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수확의 가을을 소망하여 농부가 애써 일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며 이웃에게 복음의 씨앗을 심도록 노력해야 한다(참조, 고전 3:6-8).
둘째는 수확을 위해 수고한 농부가 곡식을 먼저 차지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전도자는 교회로부터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참조, 고전 9:10-14).
또한 복음 전도 사역에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그의 믿음이 강화되고, 소망이 분명해지며, 사랑이 깊어지는 성숙의 체험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참조, 단 12:3; 눅 15:10; 롬 1:13; 약 5:19, 20).
특별히 둘째는 복음 전도자에게 자신의 생계에 구애됨이 없이 전심으로 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천막을 손수 만들어 팔면서 전도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리스도께로부터 삯군 목자라는 책망을 받지 않도록 경성(警醒)해야 한다(참조, 요 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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