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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디모데후서 1장 9절 - 12절] 군사된 소명 / 바울의 증거

[디모데후서 1장 9절 - 12절] 군사된 소명 / 바울의 증거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9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본절에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진 용어가 두 가지 나오는데 그것은 '구원'과 '거룩하신 부르심'이다.

 

그런데 여기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만인을 위해 준비된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거룩하신 부르심'은 구원을 주시기 위해 개인적으로 부르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미리부터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것을 단번에 이루셨다. 그리고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부르시는 것이다(참조, 엡 1:3-9). 이 부르심은 다시금 그를 버리지 않으시는 확실하고 완전한 부르심이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서 '거룩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오스>는 '구별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과 구별된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우리의 구원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구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참조, 살전 4:7).

 

2. 우리의 구원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9절)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한 것이다.

 

이에 관한 내용은 바울의 서신들,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거듭 강조되어 있는 사상이다(참조, 롬 1:17; 3:20-24; 10:5-13; 11:6; 갈 2:16; 3:6-14; 6:14, 15; 엡 2:9; 딛 3:5).

 

즉 구원은 우리의 율법적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그의 지혜롭고 확고한 계획에 근거하는 것이다(참, 롬 8:28; 엡 1:11).

 

다음으로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런데 은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위에 의한 구원의 가능성을 본질적으로 배제해 버린다.

 

첫째,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어떤 것이지 우리가 노력함으로 획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참조, 엡 2:8, 9).

 

둘째, 은혜는 우리의 행위에 선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창세 전에 그 은혜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참조, 딛 1:2).

 

위에서 우리는 구원이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 전에 벌써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이 큰 사랑의 섭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참조, 롬 11:6; 갈 3:6).

 

3. 복음의 역할은 무엇인가? (10절)

 

우선 복음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사망을 폐하는 역할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사망을 완전히 물리치시고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셨다(참조, 살후 2:8).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결과로 성도들에게 영원한 사망이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육신적인 죽음은 성도들에게 내세의 영생을 보장해 주는 유익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참조, 요 11:26; 빌 3:7-14).

 

또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준다. 여기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이라는 두 개념은 같은 뜻으로 '썩지 않을 생명'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부활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받을 썩지 않는 생명을 나타내 보여 주셨으며, 또한 그 분은 이 생명을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기업으로 물려주셨다(참조, 요 11:25; 롬 6:4, 5).

 

따라서 그리스도 재림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성도들의 육체도 여전히 부패와 사망의 법에 매이게 되며, 완전한 의미의 구원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참조, 벧후 3:13; 계 21:1).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을 덧입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소망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복음을 전파함으로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참조, 요 1:9; 딤전 1:17).

 

4.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첫째 이유는? (11절, 12절)

 

바울이 사도됨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첫째 이유는 '자신이 의뢰한 자'를 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의뢰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페피스튜카>를 직역해 보면 '내가 믿는 자'가 된다(참조, 롬 1:16).

 

따라서 이 말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라고 번역될 수 있으며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내가 알고'가 된다.

 

이 말대로 바울은 어떠한 경우에 처해서도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크신 사랑과 절대적인 신실성에 대해 변함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변함없는 신뢰야말로 바울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새삼 느낄 수 있다(참조, 요일 1:9).

 

그러므로 불확실성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각 개인을 지배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바울처럼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견지하여 항상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요 6:69; 17:3-8; 롬 1:14).

 

5. '나의 의탁한 ... 확신함이라'는 말의 의미는? (12절)

 

여기서 '나의 의탁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파라테켄 무>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나의 맡긴 것'이 된다.

 

그런데 '나의 맡긴 것'이라는 말도 '내가 주께 맡긴 것'(Bengel, Calvin, Alford)이라는 말과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Vincent, Heinrichs)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로 다 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Lock).

 

따라서 '내가 주께 의탁한 것'이라는 말은 '생명의 기원'을 의미하고(Calvin, Huther), '주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말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의미한다고(Fairbaim, De Wette) 할 수 있다.

 

결국 이 말은 믿는 자의 생명의 구원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께서 재림하실 그날에는 기필코 완성하실 것이라는 바울의 믿음을 고백한 말로서, 바울이 자신이 사도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두번째 이유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주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구원에 대한 소망과 복음 전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참조, 롬 1:16; 5:5; 벧전 4:16).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 고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자야말로 담대한 복음 전파자가 될 수 있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참조, 행 27: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