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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구원과 사죄의 확신(2009.10.9 간증)

구원과 사죄의 확신

-구원받은 것과 어려웠던 점-

 

저에게 세상은 조금 (아니 실제는 많이) 부럽고 탐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과거형으로 표현은 했지만 지금도 부럽고 탐나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세상은 두렵고 떨리게 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들은 단지 육적으로 조금 불편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의무교육인 가야만 하는 학교에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때론 가기 싫어도 혼날까봐 가기도 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릴 땐 항상 헌금을 드렸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주신 것이지만 헌금은 일상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십일조를 드릴 때도 항상 즐겁게 드렸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것 중 하나가 아내가 십일조를 하겠다고 할 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어린시절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성경학교였습니다. 삭개오에 대하여  선생님은 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보기 위해 삭개오가 뽕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는 노래를 많이 불러서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좀 더 자라서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시골의 중학교 이긴 하지만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를 가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습니다만 시골에는 항상 일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저에게 일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을 하기 싫어서 공부를 하거나 교회를 간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과 부활의 사건을 배우고 알았습니다. 중생 즉 거듭남의 체험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이 됩니다. 부흥집회를 통하여 뜨거운 성령의 체험을 받았습니다. 물론 어렸지만 부흥집회 동안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성령님이 내게 임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저는 이 때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고 자녀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제 조금커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원주로 유학을 나왔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제는 몸으로 때우는 일은 잘 못합니다. 그래서 자취방의 연탄불은 자주 꺼먹고, 밥을 해서 먹기보다는 라보떼(라면으로 보통 때움)가 일쑤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식 꼬라지가 안된다고 고등학교 1학년 말에 과감하게 농사를 그만 두시고 이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孟母三遷之敎). 전에도 그랬지만 이후 우리 가족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우리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등부는 학생들도 꽤 되었고 재미(길거리 찬양, 자체 수련회 등)도 있었습니다. 담당교역자는 있었지만 담당 교사들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선배가 끌어주고 지도(성가 경연대회 등)하며 참 즐거운 고등부였습니다. 지금의 학생들을 보면서 그 때의 우리는 무척 조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도와줄 선생님이 없으니 우리기리 해야 하는 것 당연한 일이었겠지요(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

 

고등학교는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그럭저럭 다녔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모르는 대학이 너무 많고 너도 나도 대학을 가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 당시 대학 진학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갔다 와서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물론 저의 교만). 그런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고향 친구가 전기에 K대학에 낙방하고 후기에 S대학에 원서를 넣는다고 해서 나도 그냥 넣었지요. 그리고 졸업도 했답니다. 하나님의 큰 도움이시지요.

 

저의 부친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으시는 분이십니다. 저의 신앙의 전수자이시며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절대 자상하지는 않았고 무척 엄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만 저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저의 아들과 딸도 내 뒷 모습을 보면서 자라겠구나 생각하면 모자람이 참 많은 사랍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예배를 드릴 때 자주 부르는 찬송이 지금가지 지내온 것“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에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이었습니다. 그 가사를 생각하면서 부르면 얼마나 은혜로운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의 지금까지 모든 삶은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아래에서 평안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좋은 직장을 주셨고, 믿음의 동역자인 아내를 만나게 하였고, 아이들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복에 겨운 나머지 저에게 육신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은 저를 항상 괴롭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만 주셨습니다.

 

저는 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시험을 주어도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의 삶이 항상 그랬습니다(IMF 시절 경제적 어려움, 갑상선 항진증, 당뇨병 의심과 건강관리 등). 저는 이런 사랑을 확증해 주신 하나님과 저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과 저에게 항상 세상 것을 뿌리칠 수 있도록 힘주시는 성령님이 있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주님 앞에 서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왜 떨리는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우선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에 두렵고 떨립니다. 사랑을 한없이 받으면서도 배은망덕하여 그 사랑과 은혜를 잊어버려 주님을 섭섭하게 할까봐 두렵고 떨리고 또 은혜를 받은 자로서 잘못 살다가 심판의 날이 오면 어찌하나 하는 두렵고 떨림입니다.

 

하지만 한번 받은 구원 결코 누구에게 빼앗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는 믿음의 경계선을 만듭니다. 저의 신앙생활도 분명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슬며시 세상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회개를 합니다. 죄가 지배하던 나를 이제는 하나님이 지배하길 바라며 나를 지배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싶다는 결단을 합니다.

 

믿음의 기초에 저를 기준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내 신념의 믿음이 아닌 신앙의 믿음을 간구합니다. ‘내가 할 테니 주님이 도와주세요’가 아닌 ‘주님이 하시는 일에 나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간구합니다.

 

구원과 죄사함을 확신합니다만, 체험의 믿음을 위하여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구 합니다. 예배시간에 나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야만 어떤 불가능이라도 해결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말씀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저도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폼 좀 내고 싶어 하는 교만 있는 속물입니다. 그래서 남보다 낮아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님은 종의 형체인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자신을 아주 확실하게 낮추셨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주님처럼 겸손하여 지려고 애써봅니다.

 

다른 사람과 다툼이 있고 불평불만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높아지기 위해 남을 끌어내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 바라보고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즉 주님을 상대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을 상대해야 할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다가 시험에 든다면 이것은 신앙의 목적이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한 자는 아무도 다스릴 수가 없고, 교만하면 주님은 물리치고 겸손한 자를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에게 시험 들어 무너지는 억울한 자가 되지 않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오직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상대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아멘’ 하고 복종하며, 옳은 줄로 믿고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선포된 말씀 중에 계속 간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만약에 주님이라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하여 봅니다. 물론 이 생각보다 실천이 빨라서 후회와 회개도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처리능력이 있으신 주님으로부터 힘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저는 승리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적으로부터 보호를 간구합니다.

 

열심히 주를 위해 충성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언짢은 일이 생기면 낙심하고 맙니다. 그래서 낙심하여 싫증이 생기지 않도록 간구합니다.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육체가 피곤하면 건강을 걱정하고 그래서 피곤이 몰려옵니다. 그래서 피곤치 않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워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피곤에 지치면 자연히 무관심해 집니다. 그래서 영적생활을 망각하지 않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싫증, 피곤, 무관심이라는 적을 성령으로 이겨달라 간구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못되고 교만할 것도 아닙니다. 자랑한다면 오직 우리의 자랑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때문에 죽었다는 그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알고 있는 것이 변화하여 제자의 삶을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