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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디모데전서 1장 1절, 2절] 인사말

[디모데전서 1장 1절, 2절] 인사말

 

1. 1장의 중심 내용은?   

 

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를 돌보고 있던 디모데에게 당시 교회와 종교계 그리고 철학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와 아울러 목회자로서의 온전한 자질을 가질 것을 명하였다(1-5절).

 

특히 그는 교회 내의 이단자들 중 율법 교사가 되려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 율법의 바른 목적에 대해 교훈하였다(6-10절)

 

또한 바울은 그 율법이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밝히면서 자신이 비록 과거에는 하나님의 훼방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는 그 사실을 용서하셨을뿐 아니라 자신을 복음 전파자로 사용하심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돌렸다(11-17절).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입히신 이유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임을 밝혔다(16절). 이 사실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륜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목화자가 지녀야 할 자질은 먼저 믿음과 착한 양심임을 강조하면서 교회를 올바로 치리할 것을 명령하였다(19절).

 

본 장에서 바울이 지적한 바대로 양 무리들의 영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목회자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장애에 부딪치더라도 낙심하여 믿음과 선한 양심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참조, 3:9; 6:12).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죄악에서 건져 주셨을 뿐 아니라 복음 사역자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향해야 한다.

 

2. 바울은 자신이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말했는가?(1절)

 

그는 자신의 사도직이 구주되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른 직분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의 자격을 밝힌 이유는 자신이 교훈을 주고자 하는 내용의 권위를 명백히 하기 위함이다. 즉 자신이 지금 행하는 권면은 결코 자신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두고자 했다.

 

그리고 '사도'라는 단어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냄 받은 자라는(참조, 고전 15:8, 9; 갈 2:8) 의미로 사용된 것이 분명한데 이는 에베소에 있던 몇몇 교인들이 바울의 권위에 이의(異議)를 제기한 데 대해 자신의 공식적인 지위를 확신시켜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후 1:1; 엡 1:1; 골 1:1).

 

더우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라는 말은 그의 사도직이 자신의 뜻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밝혀 줌으로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였다(참조, 고전 7:6; 고후 8:8; 딤후 1:1).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 전도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신앙과 지식 그리고 권위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 자격을 하나님께 인정 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참조, 창 31:38-40; 33:13, 14; 삼상 17:34-36; 눅 2:8-20; 15:3-6).

 

3.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수식어를 어떻게 사용했나?(1절)

 

그는 하나님께 '구주'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구주'(헬, 소테르)라는 용어는 이방 황제 숭배 집단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서 이는 특히 악명 높은 네로(Nero, A.D. 54-68) 황제에게도 적용된 말이었으나 바울은 '우리'라는 소유격 인칭 대명사를 첨가하여 그것을 이방적인 용법과 대조시키려 하였다. 즉 하나님은 사도 바울 자신을 위시한 모든 성도들의 주인이심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구원의 궁국적인 근원이 어디로부터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으며 이 단어가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명칭이라는 사실을 제시해 주고 있다(참조, 2:3; 4:10; 딛 1:3; 2:10; 3:4). 그러나 초기 바울 서신에서는 이 '구주'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4. 신약성경의 서신들은 어떤 서식(書式)을 취하고 있는가? (1절)

 

헬라식 편지는 일반적으로 발송인의 이름 다음에 문안을 받는 수신인의 이름이 따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서신들은 형식에 있어서 헬라식 편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특별히 헬라식 편지가 주로 개인적인 것들이었는데 반해 신앙의 서신들은 대체로 개인에게 보다는 한 집단에게 보내졌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이 쓴 기독교적 서신들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단순한 편지형식 대신에 긴 설교를 수록함으로 수신자들의 나아갈 길을 밝혀 주는 교훈집 형식을 취하였다. 이처럼 신약 성경의 서신서들은 서사시 형식으로 확대된 하나의 종교적 관심과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헬라식 편지와는 차이가 있다.

 

그 뿐 아니라 신약성경의 서신들은 육체적 건강이나 행운 그리고 번영에 관심을 두었다기 보다는 수신자들의 영적 행복에 그 주안점을 두었다.

 

5.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되었다'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친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그런데 선생과 제자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관습은 바울 당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디모데는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개종을 하였지만(참조, 행 16:1, 2) 그 개종이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시 바울의 설교를 들은 루스드라 주민의 개종과 연관이 있음이 확실하다(참조, 딤후 3:11).

 

또한 디모데는 바울과 실라가 2차 전도 여행 도중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른 후 그 여행에 따라 나서면서 바울의 신앙 교육을 철저히 받았음이 분명하다(참조, 행 16:3).

 

따라서 '믿음 안에서 참아들이 되었다'는 말의 뜻은 바울을 통한 디모데의 영적 재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6. 본 서에 나타난 바울의 문안 인사 중 다른 서신서와는 달리 특이하게 사용된 용어는?(2절)

 

바울은 본 서신에서 자신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였던 관용귀인 '은혜와 평강'이외에 '긍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긍휼'이란 말은 요이 1:3과 유 1:2 그리고 딤후 1:2를 포함하여 네 서신에만 나타난다.

 

원래 '긍휼'의 일반적인 의미는 불행한 사람을 가엽이 여기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의미는 인간의 제반 상황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신성한 힘의 개념이면서 자유로이 화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감옥에서 죄수들을 석방하기도 하는 그러한 힘이다.

 

따라서 하늘을 열고 하나님의 얼굴을 인간에게 보여 주시는 자애로운 행위 전체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한 없는 선과 사랑 그리고 위로를 가르킨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향하여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축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자적인 의사에 의해 행사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같은 은혜를 날마다 누리고 사는 우리 성도들로서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참조, 대상 16:34; 시 100:4; 요일 4: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