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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디모데전서 [1 Timothy] 서론

디모데전서 [1 Timothy] 서론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 믿음 사랑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 12)

제1장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경고와 권면

제2장 교회 내에서의 기도와 규율

제3장 교회 직분자들에게 요구되는 자격

제4장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제5장 목회 행정과 목회자의 태도

제6장 영원한 것을 소유하라

 

1. 목회서신이란 무엇인가?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전통적으로 '목회서신'(The Pastoral Epistles)이라 불리어진다. 왜냐하면 이 서신들이 목회적 성격, 곧 교회의 목회 사역에 관한 원리들과 목회자의 자질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서신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그 문체와 교리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 유사하기 때문에 언제나 한 묶음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이 세 서신들이 '목회 서신'이란 명칭을 갖게 된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7-1274)가 '이 세 서신은 하나 같이 목회 규칙을 취급하고 있는 것들이다'라고 언급한 데서 기인했다. 그러나 1726년 폴 안톤(Paul Anton, 1661-1730)이 명명한 '목회 서신 강의'란 일련의 강의를 통해 '목회 서신'이란 명칭이 정식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1849년 영국의 성경학자 헨리 알포드(Henry Alford, 1810-1871)가 '목회 서신'이란 명칭을 공식으로 사용할 것을 주창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2. 목회 서신의 진정성은?

 

목회 서신이 진정한 바울의 저작이라는 점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많다.

 

즉 유세비우스(Eusebius)는 그 당시 일반적으로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 바울의 저서로 알려졌던 14개의 책 중에서 히브리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도 바울의 편지라고 확언했으며 A.D. 170년경의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Canon)에도 목회 서신으로 알려진 세 서신이 바울의 저서로 인정되어 있다.

 

또한 이레니우스(Irenaeus, A.D. 115-200 ?)는 그의 저서 '이단 반대론'에서 거듭 이 서신들을 언급하였다(1:4; 딤후 4:21; 딛 3:10). 더우기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디모데전,후서가 이단자들의 오류를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자들은 이 서신들을 거부한다고 말하면서 이 서신들의 정경성을 옹호하였다.

 

한편 목회서신에 대한 내적 증거를 살펴볼 것 같으면 이 서신들에 나타나 있는 단어들과 각 귀절들의 어조와 감정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일치하며 서두 인사와 말미 인사들도 서로 비교해 보면 동일 저작자의 서신임을 알 수 있다(참조, 갈 6:18; 엡 1:1, 2; 빌 1:1, 2).

 

그리고 목회 서신에 제시된 기록자 자신의 복음 설교자로서의 사명과 복음의 은혜에 대한 기쁨도 다른 바울 서신들과 유사점이 있다(롬 1:5, 14-17; 고전 1:17; 갈 1:1-5; 엡 3:7-12).

 

그 뿐 아니라 바울 자신의 개종에 대한 암시가 다른 바울 서신들처럼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 목회 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더욱 확고히  해주고 있다(1:12, 13; 고전 15:9; 엡 3:8).

 

그러나 무엇보다도 목회 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입증해 주는 내적 증거는 그 내용 중에서 자신을 바울이라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1; 딤후 1:1; 딛 1:1).

 

3. 목회 서신의 진정성에 반대하는 이론은?

 

목회 서신의 진정성은 일반적으로 초대 교부들 사이에서 인정되어 왔으나 그노시스파인 마르시온(Marcion)에 의하여 그것이 자신의 주장과 상반된다는 이유로써 그 진정성이 거부되었다.

 

더우기 19세기 유럽의 비평학자들 중 슈미트(Johann Schmidt)와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등은 목회 서신의 바울 저작설을 부정했으며 바우어(F.C.Baur)는 목회 서신이 2세기의 반(反)그노시스파 인물에 의해 그노시스주의로부터 교횔르 보호할 목적으로 기록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반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의 생애 중 목회 서신을 기록한 시기와 장소가 불분명하다.

 

둘째, 목회 서신에 나타난 많은 단어들(감독, 장로, 집사라는 교직 용어 등)과 도덕적인 충고를 위주로 한 교훈들이 다른 신약 제서(諸書)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목회 서신과 다른 신약 제서(諸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바울의 나머지 10개의 서신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바울의 독특한 어투(강력하고 호소력 있는 어투)들이 목회 서신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세째, 목회 서신에는 바울의 시대에 맞지 않는 교리(의<義>의 사상과 성령의 내재적 활동 등이 목회서신에서는 다뤄지지 않음)와 바울이 주장하는 신학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설픈(주로 교훈적 측면만을 다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바울이 주장하는 복음주의적 색체보다는 도덕적이며 전통적 관행에 관심을 두고 사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주장들은 편협한 주장(바울이라는 인물과 그 사역을 제한시켜 해석함)일 뿐 목회 서신이 지니고 있는 독특성을 무시한 견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단어 선택의 문제 같은 경우 아무리 동일 저자라 하더라도 취급하고 있는 주제가 다를 경우 단어가 각각 독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울의 저작 시기에 대해서는 그의 행적조차 역사적으로 애매한 기간들이 많았는데 하물며 저작 시기의 문제들이야 그 정확도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목회 전선에서 직접활약하고 있던 자들(디모데, 디도를 위시한 목회자들)을 향해 목회의 윤리와 방법론 등에 관해 이야기해야 되었기 때문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들을 세세히 취급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무시하는 윤리를 제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4. 로마의 감옥에서 석방된 뒤 바울의 행적은?

 

바울은 로마 자기 셋집에서의 구속 상태에서 풀려났다(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는 형이 확정되기까지 투옥시키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왜냐하면 그를 괴롭히던 유대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바울을 고소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로마 법률에 의하면 황제에 법정에 상소한 후 2년 내에 소추하지 않으면 피고는 자동 석방되었다).

 

바울은 석방되자마자 곧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도록 하였는데(빌 2:19-23) 그 때가 대략 A.D. 63년 경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64년 7월에 있는 로마 대화재 사건 이후로는 기독교인들의 석방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에베소에 도착한 후 그는 인근에 위치한 골로새 지방까지 여행했으며(몬 1:22)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 그곳에서 빌립보에서 온 디모데를 만났다. 그때 그는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면서 교회를 목양할 것을 권한 후 계획했던 대로(1:3; 빌 2:24) 마게도냐로 갔다.

 

마게도냐 지방에서 그는 디모데에게 편지(디모데전서)를 썼다(참조, 1:3).

 

그리고 바울은 소아시아를 향한 여행길에서 디도를 그레데 섬에 남겨 두어 그곳 교회의 조직을 완료시키도록 하였다(참조, 딛 1:5).

 

그리고 그는 아가야의 니고볼리를 향해 전도여행을 떠났으며 거기서 디도서를 기록했다. 그 편지에서 바울은 니고볼리(이고니아 바다 동쪽 해안에 위치)에서 디도를 만나기 원했으며 자신은 그곳에서 겨울을 지낼 것을 언급하였다(딛 3:12).

 

니고볼리에서 겨울을 지낸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중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에 갔었던(행 20:4; 21:29; 딤후 4:20) 에베소 출신의 드로비모가 병들었으므로 그를 밀레도에 남겨 두고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딤후 1:4).

 

그 후 바울은 드로아에서 가보를 방문하여 자신의 외투를 그곳에 맡겨 둔(딤후 4:13) 뒤 에라스도가 머물러 있었던 고린도를 경유하여(딤후 4:20) 계속적인 전도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체포되어 로마로 갔다.

 

그런데 그가 다시 한번 체포되어 로마에 도착한 때는 아마도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 말기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가 어디에서 체포되었는지(드로아, 고린도, 로마 ?)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 재차 투옥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로마로 빨리 오라고 편지(디모데후서)를 보냈는데 그 편지는 그에게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기록한 것이다(딤후 4:6-11).

 

그리고 그는 A.D. 67년에 로마의 형장에서 순교하였다.

 

5. 목회 서신의 기록 연대는?

 

에베소와 그레데에서 각각 목회하고 있던 디모데와 디도 앞으로 보낸 목회 서신의 기록 연대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으나 바울이 1차 로마 감옥 생활을 마친 후부터 순교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석방된 때를 62-63년경으로 본다면 석방된 후 계속적인 전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기록한 디모데전서를 63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가 로마에 재투옥되기 직전과 직후에 각각 기록한 디도서와 디모데후서는 순교(67년경) 전인 66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 바울이 목회 서신을 쓰게 된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초대 교회는 열화와 같은 전도열로 인해 곳곳에 지역 교회들을 세우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과 더블어 질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관계로(지도자의 부족이 그 원인) 교회 안에는 이단 사상이 침투하게 되었다.

 

이처럼 바울이 전도 사역을 감당했던 그 시기에 벌써 교회 안에는 이단 사상으로 인한 분란이 일어났다. 이에 바울은 이단 사상을 배격하고 복음의 순수성을 변호하며 교인들을 신앙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 그 당시 목회에 주력하고 있던 디모데와 디도를 향하여 목회 서신을 기록하게 되었다.

 

즉 바울은 예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참조, 요일 4:1-3) 도덕 폐기론을 주창하던 영지주의자들의 헛된 가르침과 편협한 유대주의로부터 교회와 목회자를 보호하기 위해 목회 서신을 기록하였다(참조, 1:4-7; 딤후 2:23-26; 딛 2:1-10).

 

이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도전 뿐 아니라 영적 나태로 인한 내부로부터의 신앙적 와해를 막고 경건의 훈련과 이 땅의 시민으로서의 도덕적 품성을 고양하기 위해 목회 서신을 기록하였다(참조, 5:1-25; 딤후 3:14-17; 딛 2:1-10)'

 

계속해서 바울은 양적인 성장을 이룩한 교회들이 아직 미성숙하고 또한 지도자들의 수준이 미흡한 것을 감안하여 교직 제도와 그에 따른 교역자들의 자질을 규종하기 위해 목회 서신을 기록하였다(참조, 3:1; 딛 1:5).

 

물론 이러한 공식적 목적 이외에도 복음의 동역자이며 인생의 후배들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각각 따뜻한 위로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의 정을 나누기 위해 펜을 들었다(참조, 1:8-20; 딛 3:3-11).

 

7. 목회 서신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신학 사상은?

 

먼저 신론(神論)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 대부분의 첫머리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나 목회 서신에서는 그 같은 말이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 서신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내용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참조, 6:17; 딤후 1:7).

 

특히 1:7에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글이 나오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영광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 가능하다(참조, 6:15, 16).

 

다음으로 기독론을 중심해서 살펴보면 예수는 참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다(참조, 1:15). 그분은 인류 구원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긍휼을 베푸셨다(1:16).

 

더우기 그분은 기독교의 중심점에 위치하며 우리 믿는 자들의 주인이시며(6:15) 또한 구주가 되신다(참조, 딤후 1:10; 딛 2:13; 3:6). 이러한 사실의 증거로서 그분은 인류의 대속을 위한 제물로서 스스로 희생하였으며(참조, 2:5, 6) 영생의 보장을 위해 부활하셨다(참조, 딤후 2:8).

 

한편 다른 바울 서신들에 비해 목회 서신에는 성령에 관한 기사가 드물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성령에 관해 언급된 기사는 주목할 만하다. 즉 목회 서신의 내용 중에는 성령께서 후일에 사람들이 신앙에서 떠날 것임을 예고하실 정도로 교회의 역사를 깊이 알고 계신다는 것과(참조, 딤후 1:14) 그분은 각 사람의 구원의 동인이 되신다(참조, 딛 3:5)는 것 등의 심도 깊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비록 목회 철학과 교직 제도 및 성도의 삶에 있어서 윤리적 측면을 강조한 목회 서신이지만 이 모든 사상의 배경을 이루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다른 어느 부분 못지않게 풍부하다. 우리가 성경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성경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8. 목회 서신의 내용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바울의 다른 편지와는 차이점이 있는데 가장 분명한 차이점은 대부분의 바울 서신이 교회 앞으로 쓰여진데 반해 목회 서신은 빌레몬서의 경우처럼 개인 앞으로 쓰여진 서신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목회 서신이 표면상 개인적인 서신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편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목회 서신의 주된 목적이 교회 지도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교회 치리(治理)에 관해 지침을 주고 있는 서신이라는 사실로써 잘 알 수 있다(참조, 3:15).

 

이처럼 목회 서신이 개인에게 전달된 서신이라 하더라도 그 취급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분명히 공적인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서신들은 교회의 유익을 꾀하고 각 교인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기록된 것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인 차원을 능가한다.

 

이에 대해서 2세기 말경의 무라토리 단편에도 목회 서신을 '개인적인 애정으로 쓰여진 개인적인 편지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존경과 교회의 규율을 정리해 놓은 점에 있어서 이 서신들은 거룩히 여김을 받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교부 터툴리안도 '이 편지들은 교회의 상태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약 2000년 전에 기록된 목회 서신이라 하더라도 그 효용성은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교회 안에 세속적인 요소가 접목되어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여 있는 요즈음 목회 서신의 실천적 교훈들이 우리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 온다.

 

9. 목회 서신의 문학적 특성은?

 

먼저 구성에 있어서는 질서 정연한 면이 결여 되어있다. 즉 어떤 주제들은 특정한 이유도 없이 두 번씩이나 동일 서신 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단편적인 교리가 개인에 대한 권고나 교회에 대한 충고와 뒤섞여서 나타난다.

 

따라서 목회 서신은 형식을 갖춘 문학 작품이라기 보다는 사도 바울이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교리적이며 신앙적인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목회 서신의 문체는 바울의 다른 서신과 비교하여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즉 로마서와 같이 잘 정돈된 구조나, 갈라디아서나 고린도전,후서와 같은 엄격함을 찾아볼 수 없이 단조롭고 평범하며 또한 개인적 권면 등이 첨가된 관계로 그 분위기가 따뜻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조로움과 산만한 주제들은 목회 서신이 추구하는 바 교회를 보호하며 진리 안에 거하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0. 목회 서신에 나타난 이단 사상은?

 

본 서신들이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의 저변에는 교회 발전을 위협하는 이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단들의 성격은 사변적(思辨的)이며 이지적(理知的)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절대시하며 교회 안에 헛된 변론을 야기시켰는데(1:4) 그것에 휩쓸린 자들의 가르침은 어리석은 말 싸움에 빠지게 하는(6:4) 것이었으며 진리와는 무관한 탁상 공론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은 교회 내의 거짓되고 교만한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실제적으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소유한 편협한 지식만이 참다운 구원과 행복을 제공한다고 하는 교만에 빠져 있었다(6:4).

 

그런 자들 가운데서는 '지은 말이나 족보'를 가지고 헛된 교훈이나 쓸모없는 논쟁을 하고(6:20), 현실적이지 못한 신화들을 지어 내었다(1:4; 딛 3:9). 

 

한편 그들 가운데는 두 가지 대립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첫째는 금욕주의이다. 그들은 음식(식물)에 관한 특별 규정을 만들었으며(4:4, 5) 성(性)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결혼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였다(참조, 딛 2:4).

 

이에 반하여 다른 이단자들은 오히려 부도덕한 생활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성적으로 문란하여 연약하고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혹하였으며 스스로를 쾌락에 내맡겼다(참조, 딛 3:3).

 

또한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할례를 받은 자들도 있었다(딛 1:10).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1:7). 또한 그들은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사람들이 만들어내 명령을 좇도록 연약한 자들을 유혹하였다(딛 1:14).

 

더욱이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부활은 단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더불어 산다는 영적인 의미로서의 부활(롬 6:4)을 주장하여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이 경험하고자 했던 전인격적인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였다(딤후 2:18).

 

11. 영지주의(Gnosticism)와 목회 서신에 나타난 이단 사상과의 관계는?

 

영지주의는 A.D. 1-3세기에 널리 퍼져 있던 일정한 종교 또는 철학 체계를 가르키는데 그 사상은 다음과 같다. 인류는 무지와 망상 가운데 살고 있지만 영적 지식을 통하여 영적 해방에 도달한다는 사상이다.

 

그런데 영지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원론(二元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물질이란 모두가 본질적으로 사악한 것이며 영(靈)만이 오직 선하다고 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그같은 결과는 엄격한 금욕주의 내지는 무절제한 쾌락이라는 두 극단으로 나타났다.

 

한편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기독론을 가현설(假現說)이라 한다. 즉 물질(인간 육체를 포함)이란 선천적으로 사악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가능성을 부인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부활의 실재(實在) 까지도 부인해 버렸다.

 

그런데 영지주의의 이 같은 사상은 목회 서신이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극단의 이지주의(理知主義)와 지적인 교만 그리고 지어낸 우화와 족보, 금욕주의, 부도덕 등과 긴밀한 영관성을 가진다. 참고적으로 지나친 규율과 생의 법칙을 정해 놓은 유대교의 율법주의는 영지주의의 금욕주의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목회 서신에 나타나는 이단과 영지주의 사상의 유사점은 비평가들로 하여금 목회 서신이 영지주의가 유행하던 2세기에 쓰여졌다는 근거를 갖게 하였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기본 사상은 바울의 시대에 이미 교회를 둘러싼 분위기 속에 현존하고 있었으며 교회 안에서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으로서 목회 서신이 2세기에 쓰여졌다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12. 목회 서신을 연구하는 이유는?

 

첫째, 교회 행정에 관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즉 이 서신들은 우리에게 공중 예배에 관한 지침과 교회의 직분, 교회의 역할, 목회 상담 등과 같은 교회 행정과 지도자의 자질 및 역할에 대해 가르쳐 준다.

 

둘째, 기독교 정통 신앙에 위배되는 이단들에 대해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주변에 나타나는 이단들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준다.

 

세째, 성별된 생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인으로서 생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악한 자들에 대한 징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네째, 신조(信條)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무조건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단 사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또한 올바른 신앙 교육을 위해서 신조 곧 교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섯째, 목회 서신은 바울의 말년(末年) 활동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즉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된 후의 일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는 목회 서신을 통해 그 후로부터 바울이 처형되기까지의 행적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참조, 행 28:30, 31).

 

여섯째, 목회 서신은 A.D. 1세기 후반의 교회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3. 바울과 디모데와 에베소 교회의 상호 관계성은?

 

에베소는 우상 숭배와 타락한 이방의 문물이 성행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곳에 복음을 전하고(참조, 행 19장) 약 3년간 자신의 온 정열을 쏟아부어 교회를 개척하였다.

 

바울은 에베소 개척을 시작할 때부터 에베소를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함께 동역하였다. 그 결과 예베소 교회 내에서 디모데의 지도자로서의 위치가 확보될 수 있었다.

 

바울은 자기가 아끼고 사랑했던 에베소 교회를 디모데에게 부탁하였으며(참조, 3:14, 15) 또한 그가 떠나 먼 곳에 있을지라도 에베소 교회에 대한 관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참조, 엡 1:1).

 

한편 바울의 이러한 노력에 의해 에베소 교회는 조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장로(참조, 3:1; 행 20:17)와 집사들의 활동상이 돋보일 정도로 성숙한 단계에 오르게 되었다.

 

더우기 교회 안에는 지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에 대해 형제(4:6), 성도(5:10), 신자(5:16)라 불렀으며 교회의 지도자(사도)를 중심으로 모이기에 힘썼던 것 같다(2:8-12; 5:5).

 

이러한 성숙한 모습을 지닌 에베소 교회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바울과 디모데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의 아낌없는 헌신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가 부흥과 성숙함을 지니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과 더불어 성도들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는 훌륭한 신앙 인격을 지닌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14. 디모데전서의 수신자는?

 

이 서신의 수신자는 디모데이다. 그의 이름(헬, 티모데오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의 성품은 소심하기는 하지만 온유하고 충성스러웠다(빌 2:19-22; 딤후 4:11). 이러한 디모데에 대해 바울은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었으며 그의 뛰어난 인품을 칭찬했다(딤후 1:2; 4:9, 21).

 

한편 그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행 16:1에서 인데 그 귀절에 의하면 그는 소아시아의 루스드라 지방 출신이다.

 

그는 이교도 헬라인 아버지와 경건한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 사이에서 태어나(행 16:1; 딤후 1:5) 어려서부터 구약 성경으로 교육을 받았다(딤후 3:15).

 

이러한 디모데는 바울과 실라가 2차 전도 여행시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전도 사업에 동참하라는 사도의 요청에 쾌히 응락하였다.

 

한편 그의 아버지가 헬라인이라는 이유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그의 권위를 의심할 것을 염려한 바울은 그에게 할례를 권하였으며 그러한 절차를 거친 후 그는 폐쇄성이 짙은 유대인들에게 지도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행 16:3).

 

그런데 바울의 2, 3차 전도 여행의 동역자로 참여하였던 그는 바울의  1차 로마 투옥 이후 에베소에 와 있었다.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 바울은 거기서 디모데를 만났고 떠나는 길에 디모데에게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곳 교회를 목회하라는 부탁을 했다(1:3). 바울이 떠난 후 에베소 교회를 건실하게 돌보기 위해 그곳에 머물러 있던 중 그는 바울로부터의 첫번째 편지(디모데전서)를 받았던 것이다.

 

15. 디모데전서의 내용은?

 

인사말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도 거룩한 체하는 에베소교회 내의 이단자들을 경계하고 교회를 바르게 지도할 것을 명령했다(1장).

 

그리고 공중 예배에 관한 지침에 있어서 기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드려져야 하며, 공중 예배시 남자들과 부인들은 단정하게 행하여야 함을 강조했다(2장).

 

한편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치리하는 감독으로서의 자격과 그 일의 영광스러운 성격을 가르쳤다(3장). 또한 교회의 직분자들 중 집사들과 여자 직분자들에게 필요한 자격을 가르쳐 주었으며 집사들과 보조 집사들의 성실한 직무수행에 대한 권고를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교회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교자들의 성격과 그들의 위험성에 대해 증거하면서 이를 디모데가 어떻게 치리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쳤다(4장).

 

또한 바울은 특정 계층(늙은이, 젊은이, 늙은 여자, 젊은 여자)을 대하는 방법과, 과부와 장로의 자격 및 의무 그리고 이들을 지도하는 디모데에게 지침을 주었다(5장)

 

마지막으로...

 

저자 (강병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