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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빌립보서 4장 10절 - 20절] 선물에 대한 감사

[빌립보서 4장 10절 - 20절] 선물에 대한 감사

 

[10절, 14-18절] 바울을 도운 빌립보 성도들의 선교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 사역을 위해 수고하는 사도 바울을 기도로써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도움으로써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였다(참조, 고후 11:8, 9).

 

그런데 그들이 바울을 원조한 것은 한 번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 처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행 16:12-40)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고(15절), 또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때에도 여러 번 바울에게 선물을 보냈다(16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제 바울이 복음을 인하여 로마의 감옥에 갇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에바브로디도(2:25)를 통해 바울의 쓸 것을 보내 주었다(18절).

 

이와 같이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돕고 그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한 빌립보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모든 교회가 본받아야 할 본보기이다.

 

교회는 자신들이 쓰고 남은 것으로 선교할 것이 아니라 있는 역량을 다 발휘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써야 한다(마 28:18-20).

 

[10절, 11절, 17절, 18절] 바울이 도움을 받고 기뻐한 이유는?

 

빌립보 교회는 과거에 여러 번 바울을 도왔으며 이제 바울이 로마의 옥에 투옥되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때에도 그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10절)고 하였으며, 또 '잘 하였도다'(14절)라고 하였다.

 

바울이 이처럼 빌립보 교회의 도움에 대해 기뻐한 이유는(10절) 그가 궁핍할 때 도움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다(11절, 12절).

 

물론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었고, 바울은 이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받은 선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꺼이 자신의 고난에 동참하려고 하는 사실에 대해  것이다(10절, 17절, 18절).

 

이처럼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이에 대해 하나님께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진실되게 교제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참조, 시 133:1-3).

 

[11절 - 13절] 바울이 배운 참된 민족의 비결은?

 

복음을 인하여 로마의 옥에 투옥되어 있는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 준 선물에 대해 진실로 감사하고 있다(14절, 18절).

 

그러나 그는 궁극적으로 그 선물 자체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참조, 딤전 6:6-8).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헬, 아우타르케스)할 줄 알았던 것이다(11절). 즉 그는 풍부한 환경에 처할 때에도 그리고 궁핍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에도 참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하고 있었다(12절).

 

그 비결이란 모든 일에 있어서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었다(13절).

 

그런데 우리는 참만족과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데 관련되는 바울의 이 비결이 스토아 철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삶을 즐길 수 있는 모든 원천이 자기 자신에 속해 있다고 여기고 스스로 만족하기를 추구하지만, 바울은 믿는 자에게 힘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족함을 얻기 때문이다(참조, 고후 12:9, 10; 엡 3:16, 17; 골 1:11).

 

우리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 는력을 주시리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때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담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요 16:33).

 

그러므로 모든 환경 속에서 참만족을 누리며 마음의 평안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요 15:5).

 

[17절]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빌립보 성도들은 복음 사역을 위해 수고하는 바울 사도에게 여러 차례 선물을 보냈다(10, 15, 16, 18절).

 

그러나 그것은 바울이 그들로부터 선물 받기를 원해서 되어진 일이 아니었다(11절).

 

바울이 그들에게 구한 것은 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라 그 사랑의 선물을 준비한 빌립보 성도들의 아름다운 영적 열매를 맺는 일이었다(참조, 잠 11:25).

 

이상과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하나는, 선물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선물을 마련한 사람의 자기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고 그 사랑의 손길에 감사하며 그를 위해 축복을 빌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4절).

 

다른 하나는, 선물을 주는 사람은 자기의 주는 행위가 외식적인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되며 또 자기의 주는 행위로 인해 교만한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마 6:1; 눅 11:41).

 

[18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 선물을 어떻게 비교하고 있는가?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주의 신실한 일군인 엡브로디도를 통해 자기에게 보낸 선물(2:25-30)을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하였다.

 

여기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스멘 유오디아스, 두시안 데크덴, 유아레스론 토 데오>는 문자적으로 '향기로운 냄새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받으실 만한 제물'이란 뜻을 지닌다(KJV, an odour of a sweet smell, a sacrifice acceptable, well-pleasing to God).

 

이와 같은 표현은 희생 제물의 타는 냄새가 하나님의 코를 향기롭게 한다는 구약성경 특유의 신인 동형론적인 표현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창 8:21; 레 1:9, 13, 17; 2:12).

 

이제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마련한 선물이 하나님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 함은 그 선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 것과 같다.

 

이같이 빌립보 성도들의 선물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선물이 주의 종을 도움으로써 주의 사업을 더욱더 진척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러한 빌립보 성도들을 본받아 모든 고난과 역경을 무르쓰고 주의 일에 힘쓰는 하나님의 종들을 기꺼이 도와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인 것이다(마 25:40; 히 13:16).

 

[19절] 19절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울은 본 절에서 '그의' 하나님께서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그에게 도움을 베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도움 베푼 사실을 아시고 그들에게 은혜로 갚아 주시리라는 것이다(참조, 잠 11:25).

 

우리는 빌립보 성도들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바울의 이 확신을 통해서 실제로 '쓸 것'(헬, 크레이만)이 부족한 형편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빌립보 성도들이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쓸 것을 도운 것은(15, 16, 18절; 2:25) 그들의 원조 행위가 바울 한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에 기인한 것임을 알려 준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실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하신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도들이 받는 은혜와 축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그리고 그분과의 교제 가운데에서만 경험되며,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서만 허락된다(참조, 요 15:5).

 

[20절] 20절의 송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라.

 

20절의 송영은 본 서신을 마무리짓는 송영이 아니다. 실제 본 서신을 끝맺는 송영은 23절에야 나타난다.

 

20절의 송영은 특별히 바울이 당신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적인 보호와 돌보심(19절)을 확신하고서 하나님께 찬양함으로써 그 기쁨을 표현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또는 평상시 하느님의 진리를 깨달을 때 그 자리에서 즉시 하나님 아버지께 '아멘'으로 영광 돌려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참조, 시 29:2; 사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