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장 3절 - 11절] 감사, 교제, 사랑 그리고 기도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3-8).
[3절 - 8절]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한 내용은?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후 서로에 대한 사랑의 교제를 끊이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5절).
또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 때문에 당하는 사도 바울의 고난에, 어려운 중에도 헌물로써 참여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 개인에 대한 사랑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에 대한 빌립보 교인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7절).
뿐만 아니라 버울은 이러한 빌립보 교인들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의 교제가 그들의 구원을 이룬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다(Calvin, Bengel, Vincent).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대가 없이 물질을 받는 것이나, 베풀어진 은혜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것을 초월해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의 영적 성숙과 기쁨에 대해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참조, 요 15:11).
또한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께서 이 땅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연약함을 몸소 짊어지신 것처럼 이웃의 아품과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참조, 마 8:17; 롬 15:1).
[5절] 빌립보 교회의 교제(交際)가 갖는 특징?
빌립보 교회의 교제(헬, 코이노니아)에는 다른 교회에 비해 독특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복음을 촉진시키는 교제였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고난에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사는 가난한 성도들의 궁핍을 구제함으로 그리스도적 사랑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고후 8:1-5).
둘째, 자발적인 교제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사랑의 교제를 가능케 하였다(고후 5:14).
셋째, 세상과 분리되는 교제이다(고후 6:14).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세상적인 것, 즉 세속적인 생각, 목적, 말, 생활 방식으로부터 성별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약 4:4; 요일 2:5).
그러나 이러한 분리가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사명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분리는 인간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한 노력을 가능케 해주는 분리인 것이다(참, 요 16:7).
넷째, 그들의 교제는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교제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제까지'(5절)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처음 사랑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참조, 계 2:4).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빌립보 교회가 복음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인내하여 타교회의 모범이 되며 사도 바울의 애정의 대상이 된 것을 보았는데, 이것은 개교회 교파, 교단, 개교회 중심주의를 탈피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해 나가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참조, 골 2:2).
[6절]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헬, 파루시아)의 날을 의미한다. 이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날인 동시에 빛과 승리의 날이 된다(살전 1:10). 반면에 불신자들, 특히 사단에게 있어서는 영원한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또한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날'(빌 1:10; 2:16), '우리 주 예수의 날'(고전 1:8; 고후 1:14), '주의 날'(고전 5:5; 살전 5:2; 살후 2:2), '그 날'(살전 5:4), '저 날'(살 후 1:10), '재림의 날'(살전 2:19; 3:13; 4:15)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싸움의 끝까지', 즉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란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구원이며 해방의 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Calvin).
좌우간 이 날은 모든 성도들의 구원이 완성되며 만물이 새롭게 되는 날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고 세상을 승리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는 날이다(고전 15:13).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질 구원의 날을 소망하면서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선한 일을 모모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참조, 요 5:29; 롬 2:7; 엡 4:28; 살전 5:15).
[7절] 바울이 '매임'. '변명함', '확정함' 등의 법정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여기서 매임, 변명함, 확정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각각 <데스모이스>, <아폴로기아>, <벱바이오시스>로서 각종 재판에 사용되는 법률용어이다(참조, 행 22:1; 딤후 4:16; 히 6:16).
이것을 통해 우리는 본 서가 기록될 당시 바울은 투옥되어 재판 중에 있었으며 점점 다가오는 그의 공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 공판에서 자신이 전파했던 복음을 변명하고 복음의 진리를 명확하게 증명하기를 원했다(참조, 20절).
또한 이 재판은 바울 한 개인의 재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 대한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재판의 결과는 궁국적으로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 연대 의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의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확인 작업은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참조, 요 15:13; 벧전 1:22; 요일 3:16).
[7절, 8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디아>는 정신과 의지의 양자를 모두 포함하는 말로서 인간의 의식과 인격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면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그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그들은 항상 능력껏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함으로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처럼 그들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같이 '은혜에 참여한 자'이며 바울의 매임에도 동참한 자로서 참사랑의 관계를 유지했다.
또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모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심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플랑크노이스>는 본래 복수로서 심장, 폐, 간 등의 내장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사람의 감정, 애정 등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바로 그 사랑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이것은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참조, 롬 12:10).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생활의 근원이며 사랑의 중심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비립보 교인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준거로 하여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경험하며 또 나타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참조, 빌 3:8-11; 요 13:35; 15:12; 살전 3:12).
[9절-11절]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기도는?
첫째, 빌립보 교인들의 지식과 총명이 자라서 그들의 사랑이 더욱더 풍성해 지므로 가장 옳은 것을 분별하게 되기를 기도했다.
여기서 지식(헬, 에피그노시스)은 일반적 도덕 원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하고, 총명(헬, 아이스데시스)은 일반적인 원리를 특정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사랑은 성숙한 지식과 총명을 전제로 할 때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다(참조, 벧후 1:5-7). 또 이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준다(요일 4:7).
둘째, 진실하여 아무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기를 기도했다. 여기서 '진실'에 해당하는 헬랑 <에일리크리네스>는 본문과 벧후 3:1에만 나오는 낱말로 '순수하고 성실한 것'을 뜻한다.
셋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義)의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는 의의 열매는 단순히 율법에 형식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적인 의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빌 3:9)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의 열매를 의미한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인의 삶의 목적은 어떠한 정황 속에서라도 바른 가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임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참조, 롬 2:7; 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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