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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빌립보서 1장 1절 - 2절]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평강

[빌립보서 1장 1절 - 2절]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평강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 디모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빌 1:1-2).

[1장 요약]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바울은 본 장에서 빌립보 교인들이 어려운 가운데서 그의 고난에 현물로 동참한 것과 복음을 받아들인 후 그들이 사랑의 교제를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투옥을 염려하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가 당하는 고난이 오히려 복음에 진보를 가져왔다고 그들을 위로, 격려하면서 더욱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의 열성적인 헌신과 사랑의 교제가 바울의 뜨거운 애정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통해 우리는 그들 사이가 참사랑으로 맺어져 있으며 이 사랑은 그리스도로부터 연유된 참된 관계임을 알 수 있다(참조, 요일 4:7).

 

이것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참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교회의 참 모습은 높이 솟는 교회당이나 교인 수의 많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참조, 마 9:13; 요 15:17).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참조, 마 5:14)하신 그리스도 말씀이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되는지 생각해 보고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길을 돌이켜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참조, 마 5:15-15, 44, 45).

 

[1절] 사도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 소개한 이유?

 

"1 그리스도 예수의  바울 디모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바울 서신들 중 자신을 '종'으로 표현한 것은 본 서신과 로마서(롬 1:1) 디도서(딛 1:1)뿐이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종'은 모세(수 1:2), 다윗(시 35:27; 78:70; 89:3) 등의 선지자에게 적용된 존귀한 명칭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에는 그의 몸과 영을 모두 그리스도께 바쳐서 그 분만을 위해 봉사하는 자라는 뜻으로 종(헬, 둘로스)이란 말을 사용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의 권위나 신분을 옹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는 강한 사랑으로 맺어져 있으며, 빌립보 교인들 중에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거나 또는 사도의 권위로써만 해결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사도라는 직명을 쓸 필요가 없었다.

 

즉 본 서신은 바울이 사도로서가 아니라 진실한 애정을 가진 한 사람의 친구로서 기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소유물이며(고전 6:20) 그리스도에게 절대로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뜻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다(엡 6:6).

 

이것을 통해 사도 바울이 자신을 '종'으로 표현한 것은 성도들에 대한 격의 없는 애정의 표시임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자각한 자로서의 절대적 헌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회자라는 직분이 단순히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직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헌신하며 봉사하는 직분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참조, 마 20:28; 롬 15:25).

 

[1절]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는?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 출신의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유니게(Eunice)이다(행 16:1).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서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의 감화 속에서 자라났다(딤후 1:5).

그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때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으며(행 14:6, 7) 신실하고 경건하여 사도 바울의 사랑을 받았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말했다(딤전 1:2, 18; 딤후 1:2).

 

그는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시 동행하였고(행 16:1 - 3) 빌립보 교회의 설립에도 참여하였으며, 로마에서 옥중 생활을 할 때에도 함께 있었다. 그 후 그는 사도 바울의 가장 충성스러운 동역자가 되었다.

 

이러한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부성애적 사랑과 바울을 향한 디모데의 충성스러운 헌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형제애의 모범으로서 모든 성도들의 귀감이 된다.

 

그러므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이 일반화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디모데의 아름다운 관계를 모범으로 하여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넘치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참조, 고후 12:20; 요일 3:10).

 

[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미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을 귀중히 여긴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와 믿는 자 간의 신비한 생명적 연합을 나타낸다. 예수님도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고 말씀합니다. 이렇듯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피상적이지 않다. 가장 친밀하고 생명을 함께하는 구체적 연합이다. 거기에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있다.

 

그런데 성도들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그리스도 밖에 거하는 일도 발생될 수 있다.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기를 자처한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했다.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세상적인 관점을 따르고 육적인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자는 언제나 자기를 좋게 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고, 자기를 높이려는 끝없는 탐욕에 빠져 들어간다. 결국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롬 8:6). 왜냐하면 육체적인 욕심을 이루려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어 결국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어려운 처지에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 예수'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 묶여 살지 않았다. 감옥에서도 기쁨을 전하며, 은혜와 평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1절] '모든 성도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

 

빌립보 교인들을 성도라고 부르는데, 성도는 그리스어로 '하기오스'이고, 히브리어로는 '카도쉬'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그분을 모시는 거룩한 무리가 성도이다. 그런데 거룩이라는 말은 '....(으)로부터 떠난다', 즉 '....(으)로부터 구별된다'는 뜻이다. 죄를 떠난 깨끗한 생활이다. 생각도 구별되고, 음식도 구별되고, 목적도 구별되고, 운명도 구별되는 것이 성도이다. 세상 사람과 구별된 생각, 구별된 사상, 구별된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이다. 그러므로 성도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예수님의 종들이다.성도가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산다면 권세있는 삶이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삶이다.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였다는 것은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감독들은 권세의 지위에 있는 특별한 사람들, 국고 감독자들(대하 34:12, 17), 제사장과 레위인들(느 11:9, 14, 22) 등에 사용되었다. 반면에 집사들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 종, (식사) 시중드는 사람 등으로 사용되었다. 

 

[2절] 은혜와 평강은?

 

은혜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은총을 말한다.

 

평강은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그 뜻은 평강, 안식, 평화, 건강, 평안, 안정, 부요함이다. 지구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가장 완벽한 인사용 축복이다. 구원의 은혜가 없는 샬롬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복의 근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