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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2장 8절 - 13절] 복음 / 고난과 영광

[디모데후서 2장 8절 - 13절] 복음 / 고난과 영광

 

1.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구를 기억하라고 했는가? (8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이 본서신의 다른 곳에서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라고 부르고 있음에 반해 여기서만 특별하게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참조, 1:1, 2, 9, 13; 2:1, 3, 10; 3:12, 15; 4:1).

 

그 까닭은 바울이 디모데의 주의(注意)를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를 받으신 예수에게로 돌리려 했기 때문이다(참조, 갈 3:13; 4:4, 5).

 

또한 바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는 데까지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인정 되었다는 사실을 디모데에게 강조하려고 했다(참조, 행 2:36; 빌 2:5-11).

 

한편 여기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이라는 귀절은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사역을 담당하신 분이신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것은 유대인의 신앙의 핵심적 내용이며 소망이었다. 여기서 '다윗의 씨'는 그리스도께서 혈통적으로 다윗의 주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참조, 마 22:41-46).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부활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증거가 된다.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 하시었고, 그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다(참조, 마 28:18; 고전 15:20-25).

 

우리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하고 그 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어떠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참조, 히 2:9; 계 22:1-5).

 

2. 바울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한 이유는? (8절)

 

바울이 복음을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복음'이라고 한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의 직접 계시에 의해 그 복음을 받았기 때문이다(참조, 갈 1:2).

 

둘째, 바울이 본서신에서도 계속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그가 복음의 반포자로, 사도로, 교사로 임명받았기 때문이다(참조, 1:11).

 

세째, 비록 감옥에 투옥되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는 아직도 온 마음을 다하여 복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에 처해서도 용기를 잃지않고 진리를 고수하는 사도 바울의 불굴의 신앙을 배울 수 있으며, 동시에 참된 신앙은 개인의 삶을 보람과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참조, 요 13:15; 고전 4:16; 벧전 2:21).

 

3. 바울이 고난 속에서도 인내한 이유는? (9절, 10절)

 

바울은 동족들의 모함으로 인해 두 차례나 치욕스러운 옥살이를 해야만 했고 그가 복음을 전파하는 길목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다(참조, 행 28:30-32; 빌 1:13).

 

그러나 이러한 고난과 치욕 속에서도 그가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리게 될 영광의 전체가 된다는 사실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비록 이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 복음이 생명ㅇ르 구원할 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광을 가져다 주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그가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롬 8:18; 고후 1:5).

 

둘째, 비록 자신은 감옥에 매여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고 만방에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성도를 핍박하고 투옥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나 복음은 가둘 수 없으며 그 복음은 끝내 승리하고야 말 것이라는 신앙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세째, 바울이 옥중 생활의 모든 고난과 치욕을 참아내는 것은, 택하신 자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지키게 함으로 그들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택하신 자'(헬, 투스 엑클렉투스)는 성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 당시의 성도들과, 미래의 모든 성도들을 포함한다(Lock).

 

다라서 우리들은 다른 성도들을 위한 고난이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됨을 기억하고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참조, 롬 8:17; 히 11:25).

 

4. 바울이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1절 - 13절)

 

'미쁘다 이 말이여'는 뒤에 나오는 4개의 서로 대조되는 귀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11절 - 13절 말씀은 그 당시 교회에서 불리던 찬송의 하나였던 것 같다(Paulus, White).

 

여기서 '미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튜오>는 '믿음'과 같은 말로 '신실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처음의 두 대조되는 귀절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도니 적극적인 신앙을 나타내는 반면, 나중의 두 귀절은 성도의 불충성에서 비롯된 소극적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참조, 롬 6:8; 8:17; 딤전 1:15).

 

이중 첫째,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라는 말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주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롬 6:8; 갈 2:20).

 

둘째,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는 성도들은 내세에서 주와 함께 만물을 다스리는 후사가 된다는 의미이다(참조, 마 24:13; 행 14:22; 살전 1:5).

 

세째,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는 말은 절대 불변의 신앙 고백이 결여된 자들, 즉 상황에 따라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부인하느 자를 가리키는데(참조, 마 10:33) 이런 자들은 최후 심판 때 영원한 형벌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벧후 2:1; 유 1:4).

 

네째,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라는 말은 인간은 때로 신실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일시적으로 부인하고 떠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며 믿는 자와 늘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롬 3:4; 엡 1:1; 요잉 1:9).

 

따라서 본 귀절들은 하나의 중심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 충성하여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굽히지 않고 신실하게 살면 상을 받게 되지만 불충성할 땐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