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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빌립보서 2장 5절 - 11절] 기독론, 자기를 비움

[빌립보서 2장 5절 - 11절] 기독론, 자기를 비움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이 부분에 기록된 바울의 기독론은 일명 '캐노시스'('자기를 비우심')론 이라고 일컬어 지는바, 기독론이 그 중심 내용으로 되어 있는 골로새서의 그것보다 더 논리가 정연하다(참조, 골 1:15-29). 이제 이 부분에 서술된 기독론을 순서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는 성육신(成肉身)하시기 전 곧 영원전부터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신데(요 1:1, 2, 14) 죄인도니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빌 2:6, 7; 요 1:14).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셨다고 해서 그분의 신적 속성이 상실된 것은 아니다(참조, 요 11:25; 14:6).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신 것은 당신의 신성(神性)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당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신 것이었다.

 

이와 같이 당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기꺼이 순종하셨다(8절; 마 26:39, 4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지 3일 만에 부활(復活)하시고(마 28:1, 6)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승천(昇天)하심으로(행 1:3, 9)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마 16:19; 롬 8:34).

 

이같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의 주(主)로서 영광을 받으실뿐만 아니라(9-11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마 28:20).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이다(요 14:16-23).

 

이상과 같은 사실은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이 굳게 잡아야 할 진리이며 복음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의 큰 위로와 힘을 공급받으며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행 1:8).

 

[6절] '근본(根本) 하나님의 본체시나'는 무슨 뜻인가?

 

바울은 본절에서 겸손의 참모습을 알려 주기 위해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이 존재하기 이전 곧 영원 전부터 이미 스스로 계셨던(출 3:14) 분임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본절의 '근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파르콘>이 '본래 생존하고 있는'이란 뜻을 지녔다는 점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또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 자신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 절에 '본 체'로 번역된 헬라어 <몰페>가 영원하고 변치않는 본질적인 형태나 형상 또는 형체를 뜻한다는 점에서 알 수가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하나님과 동떨어지신 성자 하나님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과 한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요 10:30).

 

[6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을 설명하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며 하나님 영광과 능력을 행사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 영광 등을 나타 내실 수 있는 자리를 고수하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롬 5:8)에 따라 하나님의 위치에서 우리와 동등한 사람으로 이 땅에 나타나셨던 것이다(참조, 롬 3:23-26).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된 위치를 고수하시지 않고 육심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나타나신 것이 그분의 하나님 되심(신성)을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 같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 능력 등을 나타내실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표적과 가르침을 베푸셨을 뿐만 아니라(참조, 요 3:3) 그 자신을 가리켜 '길'과 '진리', '부활'과 '생명' 등으로 말씀하신 사실에서 입증된다(요 11:25; 14:6).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됨을 고수하시지 않는 그리스도의 행동은 무엇보다도 그분의 겸손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참조, 마 11:29; 요 3:16).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신 것처럼,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권리를 양도할 줄 알아야 한다. 즉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시고 몸소 겸손과 사랑의 모본을 보여 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야 한다(엡 4:15).

 

[7, 8절] 그리스도께서는 왜 사람이 되셨는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을 비하(卑下)시켜 사람이 되셨다. 7절에 '형체'로 번역된 헬라어 <몰페>는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형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사람으로 나타나셨음을 가리킨다. 즉 그리스도는 겉으로만 사람의 모양을 취하신 분이 아니다. 이 땅에 강림하신 그리스도는 참하나님이시요 참사람이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이 예표한(롬 5:14) '마지막 아담'으로서 이 땅에 오셨다(고전 15:45). 여기서 첫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임받은 것이다(창 1:26, 27; 2:15). 그러나 이 아담은 타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후손들인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롬 5:12, 15, 17, 18).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 되셔서 첫 아담이 죄지으므로 그 안에서 한가지로 타락하게 되었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인해 사망과 저주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십자가의 은혜로써 구원하셨다(롬 5:16, 17).

 

한편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영원 전부터 심중에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의 예정(豫程) 가운데 되어진 일이다(시 40:7, 히 10:5-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위하여 창세 전부터 미리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벧전 1:20) 때가 되메 보내셨던 것이다(갈 4:4).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 즉 성도들은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요 1:12, 13; 갈 4:4-6), 하나님의 독생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었다(롬 8:29).

 

따라서 성도들은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앙의 여정을 포기하지 말고 사람이 되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힘입어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요일 3:1-3).

 

[9절]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뛰어난 이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하(卑下)시켜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나시고 죽기까지 스스로 복종하시자, 하나님은 그를 부활, 승천케 하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우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높이시어 존귀하게 하신 그리스도에게 만물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이름을 주셨는데, 이 이름은 '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다(엡 1:12; 히 2:9).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분을 대변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이 모든 만물들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고 계신다면, 이는 그분이 모든 만물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엡 1:22; 벧전 3:22).

 

그러나 본 절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키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이를 '예수'라 하고(De Wette),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Vincent).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름이 11절에 나오는 '주'(헬, 퀴리오스)를 가르킨다고 보는데(Muller, Weiss)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시인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로서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참조, 행 2:36; 5:31; 고전 8:6).

 

우리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그 이름에 있어서 단순히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신 나사렛 예수가 아니라 '주 예수'이시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시인할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의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주장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증거가 없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다(참조, 요 20:28; 롬 10:9, 10).

 

[10절]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어야 할 대상들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 앞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였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자들'이란 천사들과 이미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있는 성도들을 가르킨다. 그리고 '땅에 있는 자들'은 현재 이 세상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르킨다. 또한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은 사단의 무리와 지옥에 있는 자들을 가르킨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대상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 사는 모든 피조물이다.

 

한편 본 절의 '하늘에'(헬, 에푸라니온)와 '땅에'(헬, 에피게이온) 그리고 '땅 아래(헬, 카타크도니온)에 해당하는 헬라어들은 모두 남성으로도, 중성으로도 취급될 수 있다.만일 이 헬라어 단어들을 남성으로 본다면 그때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는 대상은 인격체로서의 피조물이 된다. 그러나 중성으로 본다면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는 대상은 생물 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 포함하는 모든 존재가 된다.

 

그러나 본절의 '무릎'을 꿇는다는 행위와 11절의 말씀처럼 '입으로 예수를 주(主)로 시인하는 행위'로 보아 그 헬라어 단어들은 중성이 아니라 남성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는 존재들은 무생물이라기보다는 인격체로서의 피조물을 가르킨다고 볼 수 있다(참조, 롬 8:18-25; 계 5:13).

 

우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나아가 하나님의 구속된 자녀로서 보이는 이 우주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과 보이지 않는 영계(靈界)의 모든 존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권세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참조, 계 19:1).

 

[11절]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시인하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게 하여 당신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행하신 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영원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셨으며(요 17:5, 22, 24) 이 땅에 계실 동안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사 40:5). 즉 예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요 17:4). 특히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크게 드러내셨고 또 부활하심으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셨다(요 13:31, 32).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화롭게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Calvin). 즉 하나님은 예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피조물들의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그 이름을 높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물론이요,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시인하며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도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인정할 뿐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참조, 요 20:28; 행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