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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빌립보서 2장 19절 - 30절]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낼 계획

[빌립보서 2장 19절 - 30절]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낼 계획

 

[19절] 동역자적 측면에서 바울의 사역 특징은?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는 바울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 온 빌립보 교인들의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다(25, 30절). 그러나 그때에 그는 빌립보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다는 소식도 같이 들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바울은 주의 신실한 일군 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파송하여 그로 하여금 그 교회의 성도들을 돌보아 주도록 배려 하였다.

 

바울이 이와 같이 그의 동역자를 어느 곳에 보내거나 남기는 것은 그의 복음 사역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일로서(고후 8:6, 17,22; 딤전 1:3; 딛 1:5),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 수행케 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의 사역 활동 번위가 넓어졌다는 점(행 16:9, 10; 20:4; 롬 15:19, 23)과 아울러 그에게 복음을 위한 동역 의식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실제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를 수차 방문하며(행 15:36, 41; 18:23; 고후 13:1)그 교회들의 평화와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힘썼다(고후 11:28).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여러 환경에 얽메이거나 바쁠 때 뿐만 아니라, 늘 효과적인 복음 사역을 위해서 그의 동역자들을 어떤 곳에 보내거나 남기곤 하였다.

 

진정한 사역자는 자기 독단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모든 일을 동역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주선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성질상 개인적으로 행해지도록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눅 10:1; 행 13:2), 또한 그 일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현대에 사는 모든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혼자 하려는 자기 중심적 태도를 지양하고 항상 하나님의 일을 같이 하려는 동역자적인 선교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실 오늘날 이러한 동역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단과 교회와 성도 개개인들이 분열하며 고통을 당한다.

 

[20절-22절] 하나님의 일을 하는 디모데의 태도는?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로 결심한 후에 디모데가 하나님의 일에 임할 때 보이는 태도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즉 디모데는 바울과 뜻을 같이하여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였으며, 그 자신의 일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求)했고, 바울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그와 함께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디모데의 성실성을 잘 반영해 준다. 20절의 '뜻을 같이하여'란 헬라어로 <이소프쉬콘>인데 이는 '같은 마음의 사람'을 뜻한다(KJV, man like-minded). 이것은 디모데가 바울과 마음을 같이한 성실한 일군이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사실은 복음을 위한 디모데의 영성적이고 순수한 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군사처럼 자기일에 얽메이지 않고 주 예수의 일에 전념한 자였다(참조, 딤후 2:3, 4).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디모데의 인내를 잘 보여 준다. 디모데는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딤후 4:7)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참았던(딤후 2:12) 바울처럼, 믿음에 있어서 연단(鍊鍛)을 받은 자였다(참조, 롬 5:3, 4).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의 동일한 일군들이다. 그리스도의 일군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마땅히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을 위하여 열심을 품고 헌신하며 인내할 뿐만 아니라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도 협력을 아끼지 아니하여야 한다(참조, 행 6:4).

 

[21절]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한 자들'은 누구를 가르키나?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는 기간이 장기화되자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목자를 잃어버린 양같이 실망과 좌절과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바울은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자기를 대신하여 그들을 진리가운데 견고케 할 수 있는 사람을 파송하려 마음먹었다(참조, 19절).

 

그러나 당시 디모데를 제외한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빌립보 교회에 가서 그 교인들에게 목회작적인 도움을 베풀어 달라는 바울의 간절한 요청을 기꺼이 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중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돕기는 커녕, 그를 시기하며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만 더하게 하였다(1:15-17).

 

여기서 바울은 그와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 '저희가 다 자기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주의 일을 외면하고 거부하면서 대신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을 변명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 자신의 모습은 아닌가? 우리들은 주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실행하기를 거부할 때가 많다. 또한 주의 일을 한다 해도 남보다 더 적은 십자가, 더 가벼운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이 자기 중심주의 내지는 자신의 사명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안일함 때문에 스스로 신앙을 퇴보케 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 하는 복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자.

 

[23절 - 24절]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시기를 언제로 잡고 있는가?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 때문에 로마의 옥중에 갇힌 바울은 이제 자신이 석방될 것을 확신했다(24절).

 

따라서 그는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즉시로 파송하지 아니하였다.자신의 법적인 소송 결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은 후 그 소식을 디모데를 통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해 주고자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석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마지막 법적 판결에서 그가 실형을 언도 받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도 않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감금되어 있던 기간에 기록한 목회 서신에 나타나는 증거는 그 당시 바울이 그레데, 소아시아, 마케도냐 그리고 아가야에서 자유로운 전도활동을 했다는 석방론을 지지해 준다(참조, 1:25; 딤후 4:16, 17).

 

이상에서 볼 때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무죄 판결을 받으리라는 확증을 얻었을 때가 그 시기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바울이 이와 같이 때를 기다려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파송하려 한 것은 자신이 곧 감옥에서 풀려 난다는 소식을 그 교회 성도들에게 전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고난 가운데에서도 성도들과 교회를 생각하는 바울 사도의 모습은 모든 주의 종들이 지녀야 할 아름다운 귀감이다(참조, 히 6:10).

 

[24절] 로마의 옥중에서 석방되리라는 바울의 확신은 무엇에 근거를 두는가?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 만을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은 삶과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존귀케 되는 것이었다(1:20, 21).

 

이런 생각은 바울의 로마 투옥 기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지금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만일 무죄가 선고된다면 그는 사도로서 복음 전파의 직무를 계속하여 수행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에게 사형이 선고 된다면 그는 그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이다(1:23).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무죄 판결을 받고곧 석방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바울의 이러한 확신은 '주 안에서'되어진 것이었다. 즉 그는 아직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주 안에서'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 자신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와 생각과 마음 가짐은 그들이 '주 안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며, 성령의 능력에 의해 고무되어야 한다는 점을 교훈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주의 뜻과 일치해야 하며 주의 뜻에 속해야 한다(참조, 4:4; 고전 1:31; 갈 5:10; 엡 4:17; 6:1).

 

[25절] '에바브로디도'는 어떠한 사람인가?

 

'거룩', '찬양', '경배'라는 뜻을 지닌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을 바울에게 전달한 사람으로 신약에서 단지 본 서신에만 언급되는 인물이다.

 

이제 바울이 본절에서 그에 대해 증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그는 바울과 영적인 삶을 함께 나눈 자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바울의 '형제'(헬, 아델포스)였다.

 

둘째,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바울과 '함께 수고하고'(헬, 쉬네르곤) 동참한 자였다.

 

세째, 그는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헬, 쉬스트라티오테스)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굳건히 살며, 특히 복음을 전파할 때 수반되었던 위험을 피하지 아니한 자였다(참조, 딤후 2:3, 4).

 

네째, 그는 빌립보 교회의 '사자'(헬, 아포스톨로스)로서 빌립보 성도들을 대신하여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였다. 여기서 '돕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이투르곤>은 본절을 포함하여 신약 성경에 5회 나오는데(롬 13:6; 15:16; 히 1:7; 8:2), 이는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일군'을 뜻한다(RSV, minister).

 

이러한 사실은 에바브로디도의 희생적인 봉사 행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봉사였음을 나타낸다(4:18).

 

오늘낭 교회는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헌신적인 일군들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일군 들이 많으며 많을수록 교회가 살고 나라와 민족이 살게 된다.

 

[26절 - 28절]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로마의 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돕고 그를 시중들기 위해 자기 교회 성도인 에바브로디도를 그들이 모은 헌물과 함께 로마로 보냈다(25절; 4:18).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중병이 들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30절).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성도들은 매우 근심하게 되었고 또 바울은 물론 에바브로디도도 빌립보 교회가 염려한다는 소식을 알고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근심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바브로디도를 낫게 하셨다(27절).

 

그리하여 바울은 본서신과 함께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 자신은 물론 에바브로디도와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근심 대신 기쁨을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도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려는 참목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으며 아울러 교회의 근심스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주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참조, 마 11:28).

 

[29절, 30절]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를 기쁨으로 영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동료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보여 주어야 할 자세로써 에바브로디도를 기쁨으로 환영하라고 권고한다(29절).

 

사도 바울의 이 같은 권고에 따라 에바브로디도가 따뜻한 영접을 받아야 할 첫번째 이유는 그가 옥중에 있는 바울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일에 종사했으며, 실제로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다(30절).

 

두번째 이유는 그가 빌립보 교인들을 대신하여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 사도를 열심으로 섬겼기 때문이다(4:18).

 

우리는 여기서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모든 회생과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에 헌신하는 주의 종들을 볼 때 그들을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며 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참조, 롬 15:30; 엡 6:19; 살전 5:25; 살후 3:1, 2; 히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