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생활

성결교회의 구원관과 사중복음 (칼빈 & 웨슬레 비교)

성결교회의 구원관과 사중복음 (칼빈 & 웨슬레 비교)

 

1. 서론

기독교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인간에게 시급한 문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온 것이요, 이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함이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이다. 하나님은 그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신 이유가 "죽어가는 영혼의 구원"이었다. 기독교를 "구원의 종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혼이 떠나 버린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는 이외의 의미가 없다. 기독교에 윤리나 도덕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동시에 영혼 구원을 등한시한다면 기독교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기에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할 것이다. 구원을 말함에 있어서, 한국 교회의 신학적인 해석에는 대체로 두 갈래의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장로교회의 신앙 기반인 칼빈 신학과, 감리교회와 성결교회의 신앙 기반인 웨슬레 신학이 그것이다.

 

2. 칼빈의 구원관

요한 칼빈(1509-1564)은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신학과 법률 그리고 고전을 공부했다. 그 뒤 종교적인 문제로 스위스에 옮겨온 칼빈은 그곳에서 신정정치를 구현했던 인물이다. 칼빈의 구원관인 예정론은 특별히 한국 장로교회의 교리로 정착되었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인간이 오직 은총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구원받을 자를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셨다고 보았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이 예정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예정해 놓았을 뿐 아니라, 멸망받을 자도 예정해 놓았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을 이중 예정이라 한다.

 

칼빈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깊이 느꼈다.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의해서만이 인간이 구원될 수 있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 인간이 지은 죄는 곧 영혼의 죽음을 가져왔기에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총만이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모든 인간의 운명이 결정됨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구원이 연약한 인간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기에 안심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유익이 있다. 1619년 도르트 회의에서 칼빈주의는 5대 강령으로 이렇게 정리되었다.

 

(1) 전적 타락 :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서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2) 무조건적 선택 : 예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에 의한다는 것이다. 선택받은 자와 멸망받을 자 사이에는 아무런 윤리적, 차이가 없고 신앙의 유무에 따라 구분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3) 제한된 구속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는 예정된 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교리이다. 이 교리에 의하면 오직 선택된 자만이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4) 항거할 수 없는 은총 :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는 하나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권적으로 다가오는 능력은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5) 성도의 견인 : 선택된 성도는 하나님에 의해 은혜의 상태로 지켜진다는 것이다.

 

결국 칼빈에 의하면,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면에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통치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선행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누가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 인간은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는 행동주의 신앙이 나오게 되었다.

 

3. 웨슬레가 본 칼빈의 예정론

요한 웨슬레(1703-1791)는 영국 국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웨슬레는 어머니 수산나의 철저한 칼빈주의와 청교도주의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목사가 된 웨슬레는 신앙적 회심을 한 후, 복음 전도자로 헌신하게 된다. 웨슬레는 하루에 평균 두세 번씩 설교하였고, 매일 90마일씩 전도 여행을 하였다. 회심 후 51년 동안 설교를 42,400번 했고, 말을 타고 25만 마일을 여행했다. 그의 전도로 12만명이 구원을 얻었다. 이렇게 웨슬레는 전도와 설교의 현장에서 구원관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칼빈의 사변적(=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 구원관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졌다.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웨슬레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예정론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

멸망받기로 예정하고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을 것이고, 멸망받기로 예정되었다며 영원한 형벌을 내리신다면, 하나님을 공의롭다 할 수 있겠는가?

 

(2) 예정론은 하나님의 사랑과 배치된다.

인생을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을 멸망하도록 방치하신다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할 수 있겠는가?

 

(3) 예정론이 사실이라면 전도는 필요없게 될 것이다.

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은 전도 없이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멸망받도록 예정된 사람에게 전도를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될 것이다.

 

(4) 예정론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게 된다.

예정론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는 말과 배치된다. 그러나 웨슬레는 구원과 상관없는 특수 예정은 인정했다.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위해서 특별한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예정은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사사, 예언자, 왕, 사도, 목사와 선교사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하여, 칼빈이 주장하고 있는 이중 예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4. 웨슬레의 구원관

웨슬레가 행한 설교의 90% 이상이 구원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만큼 웨슬레 신학의 핵심은 구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1) 선재은총

웨슬레는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ㅏㅆ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 형상의 부분적 회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회개와 신앙 이전에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은총이 주어졌는데, 이것을 선재은총이라고 한다. 이 선재은총은 자유 의지 모습으로 나타나며 자유 의지는 자연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재 은총에 의하여 회복된다.

 

(2) 회개

율법의 교훈에 의해 죄를 철저히 깨닫는 것을 "율법적 회개"하며, 깨달은 후에 모든 죄에서 거룩한 것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을 "복음적 회개"라고 했다.

 

(3) 믿음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뢰하며 우리 죄를 대신 갚아 주신 분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바로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인정하고 영접하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죄 없다)고 인정하시고,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중생) 된다.

 

(4) 신자의 범죄와 회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이루고, 용서받고 의로워졌으나, 범죄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외적인 죄악은 행하지 않지만, 내적인 죄악은 범하게 된다. 우리 속에 남아 있는 내적 죄등, 곧 분노, 교만, 자기 의지, 세상 사랑, 음란, 신경질 등이다. 그러므로 웨슬러는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하면 언제든지 타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다. 때문에 날마다 회개하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아가 죽어지는 것을 통해 성결과 은총으로 성장해야 한다.

 

(5) 성화

웨슬레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아직 남아있는 죄의 뿌리 곧, 내재적인 죄 까지도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성화라고 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이 내안에 충만히 임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게 되고, 내 속에 내주하여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적극적인 차원에서는 사랑의 충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 완전한 성화는 정착된 상태가 아니요, 부단한 과정이며 고의적인 죄를 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의식적인 죄 때문에 성화된 신자 역시 순간 순간 대속의 보혈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칼빈이 하나님의 절대주권하에서 예정에 의해 구원된다는 것과는 달리, 웨슬레는 인간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먼저 주도권을 갖고 은총으로 다가오면, 인간이 자유 의지로 응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을 복음적 신인협동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칼빈이 인간의 구원이나 멸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린 데 반해, 웨슬레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갖고 시작하시지만, 인간은 선재 은총을 따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고 하므로, 인간이 담당할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책임영역을 남겨 놓은 것은 참으로 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5. 성결교회의 사중복음

사중복음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일컸는 것으로, 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핵심을 네 가지로 집약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사중복음은 성경적이고 체험적인 진리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법칙과 질서를 한데 모아 정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이지만, 구체적으로는 19세기 중엽에 미국의 심프슨에 의해서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졌다. 칼빈주의적인 심프슨의 사중 복음을 웨슬레의 복음주의적으로 소화하여 정리한 것이 오늘의 우리 교단의 사중 복음이라 할 수 있다.

 

(1) 중생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의회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다.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 성실한 사람이요, 온갖 종교적인 의무를 충실히 했지만, 그것으로는 참 만족을 누릴 수 없었다. 구원에 관한 문제를 해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복 수 없다"고 하셨다. 육체로 태어나는 것이 첫 번째의 출생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죄인의 죄 값을 갚기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로 죽으셨다. 이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의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는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안에는 새 생명이 탄생한다. 이런 사람을 두 번째로 태어났다 혹은 거듭났다(중생)고 한다. 이것을 중생의 복음이라고 한다.

 

(2) 성결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 다시 태어났지만, 갓 태어난 아기가 분별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볼 때,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성한 성도가 되기 위해 좀더 깊고 풍성한 은혜의 체험과 함께 성장이 필요하다. 성결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회개와 믿음으로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순간에 받는 경험이다. 이 은혜는 원죄에서 정결하게 씻음과 그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봉사하기에 적절한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계속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결의 은혜이다. 거듭난 성도들은 성결의 은혜를 깊이 사모하고 받아야 한다.

 

(3) 신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인 문제뿐 아니라, 육적인 문제에서도 자유함을 받기를 원하신다. 신유란 성도가 하나님의 보호로 항상 건강하게 지내는 것과 또는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음을 얻는 것으로, 우리의 육신을 안전케 하는 복음이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구원을 이루신 것과 마찬가지로 질병에서 오는 육체적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죄와 더블어 우리의 질병도 고쳐 주신다. 병 낫기를 위해서 믿음을 갖고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특권이다. 그러나 의약이나 의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4) 재림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의 심판자로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신다. 이것이 재림의 복음이다. 죄에서 해방되고 성결의 은혜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며, 신유의 은혜로 말미암아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성도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간절히 사모한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므로, 이 땅에는 진정한 평화의 나라인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복된 소망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끝까지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영적 힘이된다.

 

6. 결론

성결교회는 웨슬레의 신학적인 입장에서 사중 복음을 전도의 표제요, 복음의 핵심으로 구원의 길을 전파하고 있다. 웨슬레는 칼빈주의적 환경에 익숙한 어머니 수산나의 지도하에 성장했지만, 그의 전도 사역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하여, 선재은총에서 출발하여 성화에 이르는 복음적 신인협동설의 구원관을 정리했다. 성결교회의 구원론은 성경적이요 체험적인 온전한 구원관에 서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