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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디모데후서 4장 9절 - 18절] 그리스도 군사 / 친구들

[디모데후서 4장 9절 - 18절] 그리스도 군사 / 친구들

 

1. 바울이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한 이유는? (9절-13절)

 

첫째,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도 바울은 죽기 전에 사랑하는 동역자인 디모데를 만나 위로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했기 때문에 속히 오라고 말했다.

 

둘째, 디모데에게 복음 사역의 귀중성과 바울 자신의 사역을 계속 이어갈 디모데에게 필요한 부탁과 교훈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올 것을 명한 것 같다.

 

세째, 디모데로 하여금, 마가복음을 기록했으며 자신의 다락방을 공개하여 가정교회를 설립했던 마가를 그에게로 데려오게 하기 위해서이다(참조, 행 1:13-15; 골 4:10).

 

사실 마가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때 그와 함께 하였으나 도중에 그 일을 포기하고 되돌아감으로 인해 바울과 좋지 못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 사건이 확산되어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까지 소원(疏遠)하게 만들었다. 이넌 관계는 몇 년간 계속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두 사람이었기에 다시 복음사역의 동역자로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행 13:13; 15:36-40; 골 4:10).

 

마지막으로 추위가 엄습해 오는 감옥에서 드로아에 두고 온 겉옷과 책, 양피지 문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그것들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 오라고 했다.

 

이처럼 로마의 외롭고 추운 투옥 생활 중에 있던 선교의 백전 노장, 바울은 가까이해 줄 형제가 필요했으며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 줄 동역자가 필요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동역자들과의 교제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들에게도 진정한 교제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형제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외롭고 고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 서로가 사랑을 나누어 주는 가운데 참된 형제애를 나누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참조, 요일 3:13-18; 4:7-12).

 

2. '데마'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라? (10절)

 

데마는 한때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을 돕던 조력자였다. 그는 바울이 첫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당시 바울과 같이 있을 정도로 바울에게 필요한 인물이었다(참조, 골 4:14; 몬 1:24).

 

또 바울이 로마에 2차로 투옥되었을 때도 데마가 로마에 있었고 일시적으로 바울에게 봉사했었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 추론 할 수 있다.

 

A.D. 2세기 후반의 자료들(외경 바울행전 등)에 의하면 데마는 바울에게 있어서 필요한 존재이기는 했으나 항상 불안과 불편을 제공하는 조력자였고 신앙적으로도 불완전한 자로 묘사되었다.

 

한편 본절에 의하면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한다. 이는 그가 단순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바울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마저 저버리고 세상에 속한 자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의미 심장한 표현이다.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믿음을 버리고 떠나 가 버린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신앙 세계는 흑과 백이 분명해야 하며 중간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세상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된다(참조, 마 7:22, 23; 딤전 6:17).

 

3. 외로운 투옥 생활 중에 바울 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는? (10절-12절)

 

바울은 자기 주위에서 위로가 되어 주었던 데마, 그레스게, 디도, 두기고는 모두 자기 곁을 떠나 갔고 오직 누가만 여전히 남아 자기와 더불어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편지했다.

 

여기서 그레스게 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프랑스 고올 지방에 가서 전도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한편 디도가 바울 곁을 떠나 간 것은 세상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맡은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바울이 이미 개척해 두었던 달마디아(참조, 롬 15:19)로 파송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아시아 출신(행 20:4)으로 바울의 조역자였던(엡 6:21; 골 4:7; 딛 3:12) 두기고는 디모데가 로마로 오기로 되어 있으므로 디모데를 대신하여 에베소로 떠나 간 것 같다.  이들은 분명 데마와는 걸음을 달리한 신실한 주의 종들이었다.

 

결국 바울 곁에 남아 있던 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 혼자 밖에 없었다. 사실 누가는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때부터(행 16:10) 바울과 더불어 활동했으며 아시아(행 20:6), 예루살렘(행 21:25) 등지에서도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서 함께 복음을 전파했었다. 특별히 그는 바울이 가이사랴 및 로마에서의 옥중 생활을 했을 때 바울의 조력자요, 위안자요, 편지 대필자로서 많은 애를 썼다(참조, 행 24:23; 28:16).

 

이처럼 복음 사역자에게 있어서 인간적인 고뇌와 외로움을 달래 주는 친구 이전에 필요한 것은 항상 우리와 더불어 계시며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일 것이다(참조, 고후 1:3-6).

 

4. 바울은 디모데가 올 때 무엇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나? (13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것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가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드로아 지방의 신실한 성도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바울이 드로아를 방문해서 그곳에 자신의 겉옷을 남겨둔 사실 역시도 정확한 시간과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바울이 제1차로 로마 투옥 이후에 그곳을 들렀을 때 더운 날씨 관계로 인해 가보의 지에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맡겨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에야 비로소 그 옷을 원하게 된 것은 이제 곧 닥쳐올 겨울(21절)에 로마의 추운 감옥생활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겉옷은 추위와 비를 막을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두터운 모포를 가리킨다.

 

한편 '가죽 종이에 쓴 책'이란 양이나 송아지 등의 가죽으로 만들어 그 위에 문자를 기록했던 것으로서 보관하기에 용이한 일종의 두루말이를 가리킨다.

 

많은 학자들(Alford, Bengel, White 등)은 두루마리가 구약 성경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이 가장 약해 있을 때 육체적인 것(겉옷)과 영적인 것(성경)을 동시에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육체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동시에 느끼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둘 중에 하나를 무시한다든지 단 하나를 너무 절대시한다든지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사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과 육으로 창조하셨다.

 

5. 바울이 디모데에게 구리 장색 알렉산더를 주의하라고 한 이유는? (14절-16절)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많은 해(害)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말로 바울과 그 일행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딤전 1:20에 나오는 알렉산더와 동일 인물로서 처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다가 배교한 자이며 그는 바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람이었다.

 

또한 바울이 그에게 입힌 해는 개인적인 손해만을 의미하지 않고 복음 전체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가 바울을 적대했으니 만큼 바울의 제자인 디모데를 해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참조, 행 6:10; 13:8; 롬 9:19).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알렉산더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고 그 보복을 전적으로 주께 맡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알렉산더가 행한 악을 잊지 않으시고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참조, 신 32:35; 마 25:31-46; 요 5:28, 29; 롬 12:17-19; 고후 11:15; 벧전 2:23; 계 2:23). 

 

여기서 우리는 원수를 직접 갚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는 바울의 신앙을 통해 성도의 참된 인내를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할 능력이 없는 존재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참조, 시 62:12; 잠 24:12; 롬 2:6; 계 20:13).

 

6. '내가 처음 변명할 때'란 구체적으로 어느 때를 가르키는가? (16절)

 

이것은 바울이 첫번째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참조, 행 28:30).

 

여기서 '변명'(헬, 아폴로기아)이란 말은 고소를 당하여 법정에서 변호하는 것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이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처음 투옥되었을 때는 자기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참조, 10절, 1:15).

 

사실 인간은 자기가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을 때 남으로부터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구되어진다. 그런데 바울 자신이 감옥 생활을 하기 전에는 많은 동역자와 친구들이 있었지만 투옥 생활하던 그에게는 그 친구들이 전혀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허물을 돌리지 않기로'작정했다. 즉 바울은 그들의 비겁함과 몰인정함을 비난하지 않고 그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까지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지 연민과 동정으로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군사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는 이제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거하시는 예수를 위해 죽음과 삶을 맞이한 것이다(참조, 갈 2:20).

 

한편 오늘날에도 현실의 어려움, 특히 친구와 동료 신앙인의 배신과 술수로 마음 아파하는 현대의 사도 바울이 많이 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이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 바울처럼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기 보다는 살아 계셔서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인내하여야 할 것이다(참조, 히 12:2).

 

7. 주께서 환난 중에 있는 바울을 강건히 붙들어 주신 이유는? (17절, 18절)

 

본 귀절에 나오는 사건은 바울의 1차 투옥 때 일어난 것으로(빌 4:13) 이때에는 단 한 사람도 바울을 변호하는 증인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 그를 떠나 버렸으나 주께서는 끝까지 그와 함께 계셨다(참조, 행 9:22; 엡 6:10).

 

또한 주께서는 1차 투옥 때 곁에 계셔서 능력있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형을 면하고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주셔는데 그 이유는 바로 바울로 말미암아 복음이 세상에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들로 구원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참조, 롬 15:24, 28).

 

즉 주께서는 바울을 구원하여 더 많은 전도 여행을 하게 함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더욱더 힘있게 전파되도록 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주께서 바울을 붙들어 주신 것은 바울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어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다.

 

바울은 옛날 자신을 보호해 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과 또한 내일에도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더우기 그는 천국의 영광도 체험하게 될 것을 강력하게 확신하고 있었다(참조, 살전 1:10).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자기 백성을 붙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하는 신실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참조, 마 10:33; 눅 9:23).

 

8. 고난 중에 있는 바울을 주께서 직접 도우신 경우는? (17절, 18절)

 

바울은 그의 전생애를 통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했으며 그 일로 인해 친구들이 그를 버리고 떠났을 때에도 주께서 곁에 계셔서 힘주시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신약 성경 중에는 이러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첫번째로 바울이 경험한 것은 고린도에서의 일이다. 즉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들러 회당에서 전도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를 시기하여 바울을 그 성중에서 좇아내려 하여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밤에 환상 중에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안심하고 전도하라고 격려하셨다. 이에 바울은 그곳에서 1년 반을 전도하여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다(참조, 행 18:9, 10).

 

두번째 경우는 예루살렘의 로마군 병영에서의 일이다. 즉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죽이려 하여 로마의 천부장 루시아가 자기의 병영에 바울을 보호하고 있을 때 주께서 밤중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바울을 위로하시고 로마 황제 앞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명하셨다(참조, 행 23:11).

 

세번째는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던 배가 파선 되었을 때의 일로서 환상으로 주의 사자가 곁에 와서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 배에 탄 선원들과 상인과 로마 군인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모두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참조, 행 27:23, 24).

 

마지막으로는 바울이 두번째 로마 옥중에 갇혀서 공판을 받을 때의 일로서 주께서 바울 곁에 나타나셔서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며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니 우리 성도들도 주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참조, 삼상 15:22; 마 28:20).

 

9.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어떤 인물인가? (19절)

 

이 두 사람은 초대 교회 시대 뿐만 아니라 오고가는 세대에 가장 모범적인 가정상을 제시한 부부이다.

 

이들은 장막 제조업을 하고 있었으며 바울과 동업할 정도로 바울과는 친밀한 관계였다(참조, 행 18:1-3).

 

특별히 이들은 바울의 전도 여행에 헌신적으로 동참하였으며 평일에는 그들의 주업인 장막 만드는 일을 바울과 더불어 하였으며 안식일에는 바울을 도와 복음 전파에 진력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행 18장을 참조하라.

 

여하튼 바울이 자신의 생에 말기에 기억해 둘 사람을 하나하나 꼽아 보는 가운데서 가장 ㅓㅁㄴ저 이들 부부를 생각했다는 것은 이들 부부의 사랑과 협조가 얼마나 컸던가를 과히 짐작케 한다.

 

오늘 교회가 세속화 되어 가고 성도 상호 간에도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발견하기 드믄 때를 맞아 평신도 헌신의 모범을 보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은 이들이 절실히 요청된다. 교회는 이런 자들을 바라기 전에 먼저 각자가 바로 이러한 헌신의 주인공이 되어야 마땅하다.

 

10. 에라스도와 드로비모는 어떤 인물인가? (20절)

 

먼저 에라스도는 고린도 출신으로 디모데와 한 팀이 되어 바울의 전도 사역에 일익을 담당했던 자이다(참조, 행 19장).

 

그리고 드로비모는 에베소 출신으로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였으며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울 때 에베소 교인들이 헌금한 물질을 예루살렘에까지 운반한 자이기도 하다(참조, 행 19:4; 21:29).

 

그런데 그는 병으로 몸져 누워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교회 에베소에서 약 45km 지점에 있는 고요한 항구 도시에서 요양을 한 것 같다.

 

이처럼 복음 사역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직능을 수행하며 또한 각기 다른 체질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갔다. 그들 중에는 복음 사역에 큰 장애가 될 만큼의 심각한 질병을 가지고 있었던 자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복음 사역자라고 해서 아담 아래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통과 질병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즈음 잘못된 싱앙관을 가진 사람 중에는 위의 사실을 극구 부인하려고 한다.

 

우리의 육체는 분명히 불완전한 상태로 이 땅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음 사역자가 불신자들보다 더 유리하고 복된 것은 하나님게 자신의 불완전함을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참조, 약 5:13-16).

 

11. 바울은 디모데에게 언제까지 오기를 당부했는가? (21절)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겨울 전에' 자기가 있는 곳에 도착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왜냐하면 겨울 전에 그가 당도해야지만 바울이 필요로 하는 겉옷을(13절)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중해 전역에는 겨울 철(10월 - 4월)에 항해가 매우 어려울 정도로 파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참조, 행 27장).

 

더우기 그는 자신에게 닥쳐 올 인생의 겨울, 즉 죽음이 눈 앞에 와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참조, 6절) 자신이 사랑하던 디모데를 어서 빨리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인생의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골인 지점 앞에 선 숙련된 신앙 경기자의 입에서 '겨울' 이야기가 나오고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는 호소조의 말이 흘러 나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호소와 당부는 인생의 실패를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려는 삶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참조, 5절). 바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멀지 않아 인생의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참조, 히 9:27). 그 겨울을 맞는 우리의 자세는 어더한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8절)

 

저자 (강병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