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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빌립보서 3장 17절 - 21절] 세속주의자에 대한 경고

[빌립보서 3장 17절 - 21절] 세속주의자에 대한 경고

 

[17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의 행실을 본받으라고 종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권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의 이 같은 권면이 결코 자기를 추켜세우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할 당시 복음을 인하여 로마 옥중에 투옥되어 고난을 격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눈물로써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8절; 2:17).

 

뿐만 아니라 본 절에서 바울은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헬, 헤마스)는 바울 자신과 그의 동역자인 디모데(2:19-22) 그리고 빌립보 교회에서 파송되어 바울을 섬긴 에바브로디도(2:25)를 가리킨다.

 

이상에서 볼 때 우리는 비록 고난 가운데 처해 있지만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며 권면하는 바울 사도의 모범적인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현실 생활 가운데에서 항상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를 구하며 또 그 영광과 은혜를 남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한다(참조, 4:9; 살후 3:7; 딤후 1:13).

 

[18절]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는 누구를 가르키는가?

 

몇몇 주석가들은 이는 2절에 언급된 유대주의잘들로서 십자가의 공로를 무시하고 율법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가르킨다고 본다(Lenski, Muller, Barth).

 

또 어떤 주석가들은 이는 도덕율 폐기론자들로서 죄 사함을 주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왜곡하여 율법의 모든 금지 조항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가르킨다고 주장한다(J.B.Lightfoot, Kennedy, Beare).

 

여기서 우리는 본 절의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를 후자 곧 도덕율 폐기론자 들을 가르키는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본 절의 바로 뒤에 이르러 19절이 여러 가지 육신적인 욕망에 빠져 절제하지 못하는 도덕 폐기론자들의 특징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두 부류의 도덕 폐기론자 들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율법의 멍에로부터 벗어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 자유(갈 5:1)를 왜곡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율법이 폐기되었으니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남용하여 자신의 육욕을 만족시키는 무절제한 삶을 산다.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원리를 왜곡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에 의하면 은혜는 모든 죄와 허물들을 덮기에 충분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어떠한 죄도 사(赦)하시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인간이 어떤 죄를 지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죄를 합리화시킨다.

 

이상과 같이 두 부류의 도덕 폐기론자들은 근본적으로 자기들이 범하고 있는 죄를 정당화 하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자기의 죄를 합리화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는 않은지 자아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사고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이요, 독이 될 수 있다(갈 5:9).

 

그러므로 우리들은 만일 그와 같은 오류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며, 또 교회 안에 그러한 사악한 생각이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한다(참조, 갈 5:16-18; 벧전 2:16).

 

[19절] 도덕 폐기론자들의 특징과 그 결말은?

 

바울은 도덕 폐기론자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저희의 신(神)'은 배'라고 말한다. 이는 특히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난봉군들에게 잘 사용되는 표현으로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사람들을 단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참조, 롬 16:18; 고전 6:13; 유 1:11).

 

둘째,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다'고 한다. 이는 극한 방종으로 인해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할 것도 서슴치 않고 즐기는 도덕 폐기론자들의 특징을 잘 규정짓고 있다(엡 5:12).

 

세째, 저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한다. 이는 저들이 '하늘 일'(요 3:12)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다만 이 세상의 일만을 생각하는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지니는 도덕 폐기론자들의 결말은 '멸망'이다. 여기서 '멸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레이아>는 '구원'이란 뜻을 지닌 헬라어 <소테리아>의 반대어로서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단순한 멸망이 아니라 고통과 죽음의 상태가 계속되는 영원한 멸망을 의미한다(Living Bible, eternal loss).

 

감각적인 쾌락만을 탐닉하는 사람들은 비록 이 땅에서 육체의 낙을 즐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뿐이요 종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된다(계 21:8; 22:15).

 

그러므로 성도들은 육신을 좇지 아니하고 성령의 뜻을 좇아 사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롬 8:5-8). 그리고 육체의 정욕과 시험을 이기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마 6:13). 

 

[20절] 성도의 진정한 시민권은 어디에 있는가?

 

참된 성도의 근본적인 연고지는 '하늘'(헬, 우라노스)에 있다.

 

이것은 당시 빌립보 시가 비록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던 것과 같다.

 

즉 성도는 상상할 수도 없이 높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 곧 '위에 있는 예루살렘'(갈 4:26)에 속해 있으며, 이 땅에서는 다만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 벧전 2:11)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서 살 동안 천국 시민으로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와 달리 성도가 어느 곳에서든지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세상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도가 아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1:27).

 

[21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우리의 몸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본 절에서 우리의 현재 몸은 '낮은 몸'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낮은 몸'(헬, 토 소마 테스 타페이노세오스)은 죄 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 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인간의 육체의 연약성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몸은 그 자체가 연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몸을 늘 주의해서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의 몸은 변화된다. 즉 죽은 성도는 부활을 통해서 그리고 살아있는 성도는 들려 올라감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는 변화되어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몸'을 입게 된다.

 

여기서 '영광의 몸')헬, 토 소마티 테스 독세스)이란 '썩지 아니할 몸'이요 '신령한 몸'이다(고전 15:42-44).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역사가 만물을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꿇어 엎드리게 하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2:10)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은 우리들은 장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과 아울러 우리 자신의 몸이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된 몸으로 변화되리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살전 4:13-18).

 

아울러 우리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재림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벧후 3: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