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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빌립보서 3장 4절 - 11절] 바울의 모범

[빌립보서 3장 4절 - 11절] 바울의 모범

 

[4절-6절] 유대주의자들을 어떻게 설명하나?

 

사도 바울은 그 잔신이 과거에 매우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행 22:3, 4).

 

첫째, 그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롬 11:1; 고후 11:22). 이것은 그가 이방인 이었다가 후에 개종한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었음을 나타낸다(참조, 창 17:2; 레 12:3).

 

둘째, 그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하나인 베냐민 지파 사람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다. 이것은 비록 그가 이스라엘 땅이 아닌 길리기아의 다소(Tarsus)에서 태어났지만, 그 자신은 유대 사람으로서 유대 언어와 습관과 생활 방식을 지닌 철저한 유대인이었음을 강조한다(참조, 행 21:40; 22:2).

 

세째, 그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크게 존중을 받았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으며, 유대교 중 가장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파의 일원이었다(참조, 갈 1:14).

 

네째, 그는 유대교인으로서 하나님의 교회 곧 기독교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殘害)하였다(갈 1:13).즉 그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옥에 가두는 일을 서슴치 않고 행했으며, 또 그들을 죽일 때 찬성표를 던졌고(행 26:10)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 그들의 옷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행 22:20) 성도들로 하여금 강제로 예수를 모독하게 하였으며 외국에까지 가서 그들을 핍박하였다(행 26:11).

 

다섯째, 그는 '율법의 의(義)'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6절). 즉 그는 열심 있는 바리새인으로서 모세 율법에 기록된 모든 규례를 따르는 데에 매우 신중했기 때문에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아무도 그를 책잡을 수 없었다.

 

이상과 같이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한 것은 자랑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정통적인 유대인이었으나 지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현시점에서, 유대주의자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유대인의 혈통과 율법의 준수를 강조하는 것이 헛된 일임을 나타내려 하였다(7, 8절). 나아가 바울은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이루기에 부적합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였다(9절).

 

성도들은 자신이 아직도 종족이나 혈통 또는 과거의 업적이나 신분 등의 노예가 되어 그것들을 남들 앞에 내세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라! 여전히 이런 것들이 자신의 삶을 지배한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가리워질 수밖에 없다. 성도들은 그 모든 육체적인 요소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선용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분토로 여길 수도 있어야 한다(참조, 마 16:14).

 

[7절-9절] 바울의 고백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가?

 

바울은 이 부분에서 자기가 누렸던 모든 특권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해(害)로 여길 뿐만 아니라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다른 모든 것들보다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참조, 요 6:68; 고전 1:18-25).

 

아울러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 것이라고 밝힌다(갈 2:16).

 

이와 같은 바울의 고백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소유와 가치들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한다(참조, 눅 9:25).

 

[10절]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의미는?

 

이 말씀은 8절에 기록된 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포함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체험을 통해 알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체험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믿는 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유형과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게 된다(골 1:24). 이 고난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1:29).

 

그렇다면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믿는 자가 자신의 옛 생활을 장사(葬事)지내고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된다는 것을 뜻한다(참조, 롬 6:4-11).

 

오늘날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신의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체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체험의 연속이 바로 성화의 과정이며 이 성화의 과정은 그리스도인이 현재의 상태에서 그리스도께 합당한 자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정이다(21절; 롬 8:29; 고후 3:18).

 

[11절] '부활'을 구체적으로 설명?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먼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부활 곧 첫째 부활이 있은 다음, 그 나머지 사람들 곧 불신자들의 심판의 부활이 있게 된다고 선언한다(단 12:2; 요 5:28, 29; 행 24:15; 계 20:4-14).

 

그러나 본 절의 '부활'(헬, 엨사나스타시스)은 그리스돌르 주(主)로 믿는 성도들의 부활 즉 첫째 부활을 가르킨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본 절에서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어떤 주석가들은 본 절에서 사도 바울이 죽기 전에 주 예수께서 오심으로 그 자신이 죽음을 보지 않고 부활을 맞이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S.L.Johnson).

 

우리는 비록 바울의 그 같은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주께서 내가 살 동안에 재림하신다고 생각하며 내가 기쁨으로 그분을 영접할 수 있는 신앙적인 준비를 갖추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받아야 한다(참조, 마 2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