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생활

[빌립보서 3장 1절 - 3절]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

[빌립보서 3장 1절 - 3절]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

 

[3장] 본 장의 중심 내용은?

 

전 장에서 사랑과 일치 그리고 겸손에 대해 교훈한 바울은 이제 본 장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라고 경계하고 있다.

 

먼저 바울은 율법주의를 주장함으로 그리스도 교회를 혼란시키는 유대주의자들을 삼가라고 하면서(1-3절) 그 자신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으나,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분토(糞土)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밝힌다(4-9절).

 

그 다음 바울은 부활에 참여하려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성도들이 거룩한 목표를 향해 신앙의 경주를 계속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9-16절).

 

끝으로 바울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유 사상가들의 결국은 멸망임을 확신하면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시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거룩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한다(17-21절).

 

[1절]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는 첫번째 권면은?

 

그것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뻐하라'는 권면은 본 서신의 2:18과 4:4에도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기뻐하는 일이 '주 안에서'되어지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권면을 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 매여 있으며 또한 본 서신을 읽는 빌립보 성도들은 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다(서론 / 빌립보교회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난을 능히 이기게 하실뿐 아니라 그 고난으로 인해 더 큰 상급을 주시는 '주'(主) 예수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1:20, 21).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바울이 본절에서 말하고 있는 '기쁨'은 고난과 슬픔을 삼켜버리는 거룩하고 놀라운 기쁨이다(참조, 사 35:10).

 

성도들이 이와 같은 기쁨을 체험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와 우리가 속한 이 세계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확신할 수 있다(시 5:11, 12).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과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마 5:11, 12; 벧전 4:12, 13).

 

[1절] '같은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첫째, '같은 말'은 본절의 앞 부분에 나오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권면을 가르킨다는 견해가 있다(Alford, Weiss, Moffatt).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절 뒷 부분에 나오는 '너희에게 안전하니라'는 표현이 기뻐하라는 권면과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같은 말'은 3장과 4장에 암시된 교회 안의 불일치에 대한 경고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J.B.Lightfoot). 우리는 이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이유는 본절의 '같은 말'을 교회의 불일치에 대한 경고로 볼 경우 본절의 내용과 거짓 교사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2절 이하의 내용이 그 주제에 있어서 상치(相馳)될 뿐만 아니라 본 서신의 저자인 바울이 어떤 방해에 의해 갑자기 주제를 변경했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째, 본 절의 '같은 말'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있다(Zahn, Meyer, E.F.Scott, Benoit, Vincent). 가장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주장은 신빙성이 강하다. 왜냐하면 위험스런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지닌 '너희에게 안전하니라'는 내용이 본절에 나오고 있으며, 또 이 내용은 유대교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2절 이하의 내용과 논리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 견해에 따를 때 본 절 말씀이 거짓 교사들을 삼가라고 경계하는 2절 이하에 있는 내용의 서론격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절]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같은 말'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가리킨다(위, 참조). 그리고 본 절에 '수고로움'으로 번역된 헬라어 <오크네론>은 '성가신', '지루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RSV, NIV, irksome).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끼치는 해악성을 그의 서신에서 여러 번 강조한바 있다(롬 16:17, 18); 갈 2:4; 6:11-13; 골 2:8).

 

이제 바울은 본 서신에서도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하며 성도들이 그들을 경계할 것을 말한다(2-9절; 1:28).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빌립보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에서 벗어난 사악한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인도해 줄 수 있다는 견지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자신의 노력이 아무리 되풀이 된다 할지라도 결코 '지루한' 일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본 절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 주신 양들을 악한 세력과 환경으로부터 보호 하려는 참목자 상(相)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양들을 맡은 청지기는 결코 그 양들을 사단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 따라서 청지기는 그 양들이 진리 가운데 성장 할 수 있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권면하고, 가르치고, 보살펴 주는 일을 지루하거나 성가신 일로 여길 수 없다(참조, 요 10:11-15).

 

[2절] '개들'과 '행악하는 자들'과 '손할례당'(損割禮黨)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당시 '개들'(헬, 쿠나스)은 애완 동물이 아니라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길손에게 덤벼드는 사나우며 악독하고 집이 없는 동물이었다((J.B.Lightfoot).

 

개의 이러한 불결함과 파렴치함 때문에 성경에 이 용어가 사용될 때 언제나 그것은 치욕과 경멸의 대상을 질책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참조, 신 23:18; 삼상 17:43; 24:14; 잠 26:11; 사 56:10, 11).

 

특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언급할 때 '개'라는 말을 사용하였고(마 7:6), 바울 또한 본 절에서 그릇된 교리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유대주의자들을 향해 이 말을 사용하였다.

 

한편 '행악하는 자들'은 헬라어로 <투스 카투스 에르카투스>인데 이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 악한 일군들'이다(RSV, the evil workers). 이 말은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기 보다는 율법의 규례들을 이행하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 준수가 구원의 조건임을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악착스런 집념을 나타낸 표현이다.

 

또한 '손할례당'은 헬라어로 <텐 카타토멘>인데 이는 '절단한 자'를 뜻한다(NIV, mutilators of the flesh).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을 가리켜 풍자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참조, 갈 5:12).

 

위에서 볼 때 '개들'과 '행악하는 자들'과 '손할례당'은 모두 은혜를 무시하고 율법 준수를 고수하는 유대주의자들을 가르키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바울 시대의 유대주의자들과 같이 복음의 진리를 거스리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며 이런 자들이 그리스도 교회 안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롬 16:17, 18).

 

[3절] '진정한 할례당'은 어떤 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의 특징은?

 

'진정한 할례당'이란 육체의 할례를 주장하며 율법의 준수를 고수하는 '손할례당'(2절) 과는 달리, 마음의 할례를 행한 자 곡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거듭난 사람들을 말한다(참조, 롬 2:25-29; 골 2:11).

 

바울은 '진정한 할례당'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이들 할례당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인간의 전통이나 형식으로 봉사하지 않는다(갈 5:25).

 

둘째, 이들 할례당은 개인의 선행이나 노력이나 공적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다(갈 6:14).

 

세째, 이들 할례당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의 의를 얻기에는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롬 3:23).

 

오늘날 성도들은 자기 자신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봉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참소망과 자랑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지, 아니면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갈 6:4).

 

만일 자신이 아직도 인간적인 자랑이나 교만을 버리지 못하고 있거나 외형적인 율법에 얽매여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이다(고후 13:5).